2015년, 우리를 살찌운 10가지 먹거리

입력 2015-12-24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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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한 해는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먹고 마셨다. 1월의 야심찬 다이어트 계획은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 나오는 신제품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12월인 지금 나에게 남은 건 5kg의 지방뿐이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한 해 동안 잘 먹었으면 됐지 뭐.

지난 일 년 동안 나의 식도와 위장을 훑고, 지금은 내 뱃살에 안착한 먹을 거리 열 가지를 모았다. 일 년 동안 잘 먹었습니다. 내년에는 조금 살살 부탁해요.

2015년은 유독 편의점을 많이 들락거렸다. 아마 내 카드 내역을 정리해보면 적어도 2할은 편의점에서 긁은 것이겠다. 편의점 문이 닳도록 다녀도 매일 새로운 먹거리가 등장했다. 참 풍성한 해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도시락이 그랬다. 모델 면면도 화려했다. GS25는 국민 갓혜자 선생님과 동엽신을, 세븐일레븐은 국민 여동생 혜리를, CU는 집밥 백선생을 모델로 내세웠다. 이토록 경쟁이 치열하니 나물부터 고기까지 10찬은 기본이고, 질도 양도 점점 더 훌륭해졌다. 집밥보다 훨씬 맛있다고 하면 우리 엄마가 화내겠지? 월급만 빼고 다 오르는 이 시대에 편의점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2014년 대세가 ‘먹방’이었다면 2015년은 ‘쿡방의 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제 남들이 먹는 걸 구경만 하는 시대는 지났다. 직접 만들어 먹는 쿡방이 최고다. 쿡방의 정점은 tvN <집밥 백선생>이다. 사람 좋은 웃음을 띤 백종원 선생님은 쉽고 맛있는 집밥 레시피를 우리에게 알려줬다. 그것도 잔뜩. 최소한의 재료로 맛을 내기 위해서는 조미료가 필수다. 설탕을 잔뜩 넣어 달콤한 맛을 살린 ‘만능 간장’ 레시피가 소개된 다음 날에는 슈퍼에 간장이 동 나기도 했다. 이 만능 간장을 넣어 만들면 모든 음식이 정말 맛있어진다. 간장과 설탕이 얼마나 많이 들어갔는지는 쿨하게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

나도 비타500 박스를 받고 싶다. 신사임당 얼굴이 꽉 찬 걸로다가. 2015년 봄은 이완구 전총리의 스캔들로 떠들썩했다. 비타500 박스에 오만원권 지폐를 차곡차곡 쌓아 넣으면 5500만원 가량이 들어간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꽉 채우지 않아도 좋으니 반만이라도 어떻게 안 되겠니? 내가 비타민이 부족해서 그런다.

올해는 음식도 음식이지만, 덤으로 주는 피규어가 참 풍성한 한 해였다. 맥도날드는 미니언즈와 원피스로 쉬지 않고 해피밀을 사게 만들었고, 이에 질세라 롯데리아도 헬로키티, 짱구 그리고 아톰까지 가열찬 피규어 공세를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나뚜루는 디테일 쩌는 상디와 샹크스 피규어, 헬로키티 보틀까지 만들어 경쟁하듯 우리를 매장 앞으로 불러 모았다. 이 뿐인가, 삼립에서는 빵 안에 라인 프렌즈 캐릭터 띠부띠부씰(띠고 붙이고 띠고 붙이는 스티커)을 넣어 빵은 버리고 스티커만 취하는 웃지 못할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덕분에 우리의 컬렉션은 풍부해졌으며 지갑은 가벼워졌다. 누군가 그러더라. 음식은 거들 뿐이라고.

연말이다. 일 년 동안 벌어진 더럽고 치사한 일을 흘려보내기엔 역시 술이 최고다. 며칠 남지 않은 연말 동안 우리는 최선을 다해 마시고, 또 열심히 게워내겠지. 하지만 올 연말은 조금 순하게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소주의 도수는 점점 더 낮아졌고, 그 빈자리는 과일이 채웠으니까. 그 시작은 ‘소주계의 허니버터칩’으로 불리며 대란을 일으킨 알코올 도수 14%에 유자맛이 나는 순하리다. 구할 수 없으니 더, 더, 더, 마시고 싶어졌다. 지금 소주는 자몽, 블루베리, 복분자, 사과까지 세상의 모든 과일을 품으려 하고 있다. 결국 보해양조에서는 끝판왕으로 알코올 도수 3%의 소다맛 소주를 선보였다. 암바사 맛이 나는 이 음료수를 소주라고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논의가 더 필요하겠다. 우리의 인생이 쓰니, 술이 달아지더라. 한 가지 슬픈 건 취하기 위해서 지갑이 더 가벼워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한여름의 먹부림은 단순히 밥으로 끝나지 않는 법이다. 올여름도 식사를 마친 후 달콤하고 시원한 빙수의 유혹을 차마 뿌리치지 못 했다. 몇몇 빙수는 우리의 밥값을 훌쩍 뛰어넘는 가격을 자랑했다. 그래도 역시 가격 깡패 끝판왕은 JW 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 더 라운지의 ‘돔 빙수’다. 눈꽃 얼음 위에 딸기 솜사탕을 올리고 생장미꽃잎과 금가루 그리고 2004년산 돔 페리뇽을 아낌없이 부은 이 빙수의 가격은 무려 8만원. 직장인의 평균 점심값을 6500원이라고 했을 때, 12번을 아껴야 겨우 먹을 수 있는 가격이다. 내년에는 또 어떤 빙수가 나올지 모르겠지만, 당분간이 이 가격이 깨지긴 힘들겠다. 그나저나 과연 얼마나 팔렸을까? 올해의 미친 가격이다.

올 한 해 중국집에 전화를 거는 일이 많이 줄었다. 짜장면이 생각나면 짜장라면을, 짬뽕이 생각날 땐 짬뽕라면 봉지를 뜯었다. 시작은 짜왕이었다. 오랫동안 독보적인 자리를 지켜온 짜파게티에게 같은 농심 출신의 짜왕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것은 팀킬인가? 짜왕을 시작으로 수많은 짜장라면이 등장했으며, 짜파게티의 천하통일 시대는 막을 내리고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했다. 이 난세를 짜왕이 평정했을 즘, 오뚜기는 아예 판을 뒤엎을 새로운 것을 내놓는다. 그렇다, 진짬뽕을 필두로 짬뽕라면전이 시작된 거다. 불과 오개월 만이다. 맛짬뽕, 갓짬뽕, 불짬뽕 온갖 짬뽕라면이 쏟아져 나왔다. 짬뽕라면은 저마다 짬뽕집에서 내는 ‘불맛’을 강조했다. 현재는 진짬뽕과 맛짬뽕 이파전으로 좁혀진 듯하지만, 아직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우리는 그저 맛있게 먹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올 한 해 중국집의 매출이 조금 줄었을까?

[세상의 모든 짜장라면을 먹어봤다, 궁금하다면 여기로]

[짬뽕라면이 궁금하다면 여기로] 

이건 치킨의 반란이다. 은혜로우신 치느님은 언제나 옳다는 공식이 깨졌다. 이게 다 멕시카나 때문이다. 일 년 동안 열심히 꿀도 바르고 버터도 바르던 식품업계에서 이제 남은 건 과일뿐이었다. 소주도 과자도 과일맛을 더했던 1년이었다. 멕시카나에서는 그냥 잘 튀겨만 내도 맛있는 치킨에 딸기와 바나나 그리고 메론 맛을 더했다. 멕시카나, 우리한테 왜 그랬어요? 무엇이든 잘 먹고, 또 많이 먹어 돈을 버는 아프리카 먹방 BJ들이 욕하는 모습을 보고, 섣불리 도전하지 않기로 한다. 내 돈과 미각은 소중하니까. 세상에, 아이유도 맛없는 치킨을 구하진 못 하더라.

한 번도 믿어 본 적이 없었다. 광고 이미지가 진짜라고 믿을 만큼 순진하지 않으니까. 몸에 딱 맞는 정장을 입은 김상중 아저씨가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나 봤던 말투와 표정으로 햄버거 속 모짜렐라의 치즈를 늘리고 또 늘려도 콧방귀만 뀌었다. 그런데 진짜가 나타났다. 롯데리아 모짜렐라 인 더 버거의 치즈는 오히려 광고보다 더 잘 늘어났다. 재미를 붙인 네티즌들은 누가 더 길게 치즈를 늘리는 지로 일종의 컨테스트를 벌였다. 이건 광고 속에 ‘사진 속 이미지는 실물과 다를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넣을 필요가 없는 버거다. 아직까진 세상이 거짓으로 물들진 않았나 보다.

달고 느끼한 허니버터에 지쳐가고 있던 찰나였다. 그래서 포카칩의 라임 페퍼가 더 반가웠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니었나 보다. 시큼한 라임과 알싸한 후추가 감자칩의 기름과 만나니 생각지도 못한 반전의 맛을 냈다. 처음에는 이상해도 자꾸자꾸 손이 간다. 좋아하는 사람은 열정적으로 좋아했고, 싫어하는 사람은 싫어하는 맛이었다. 호불호가 있긴 하지만 포카칩의 도전정신만큼은 높게 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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