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은 지독할 정도로 똑똑하지만 큰 그림에서 보면 멜린다가 더 낫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의 오랜 친구이자 그가 이끄는 자선재단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가장 큰 후원자 워렌 버핏을 이렇게 말했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버핏은 2006년 향후 20년간 300억 달러를 이 재단에 기부하겠다고 밝히면서 “멜린다가 없었다면 기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빌 게이츠도 “내가 자선사업을 시작한 것은 오로지 멜린다 때문”이라고 말했다. 버핏과 그의 남편 게이츠는 지난해 포브스가 선정한 기부왕 순위에서 나란히 1,2위를 기록했다. 멜린다가 전세계에 내로라하는 억만장자들을 ‘기부왕’으로 만든 일등공신이었던 것이다.
게이츠 부부의 자산 합계는 857억 달러(약 101조원). 지구촌에서 하나뿐인 ‘100조 커플’이다. 세계 유일 100조 커플인 이들은 전 세계 갑부들 사이에서 자선사업의 롤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다. 이들 부부가 처음부터 자선사업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아니다. 남편 게이츠가 돌연 자선사업가로 변신한 것은 그의 나이 45세. 글로벌 기업인 MS의 ‘회장님’이라는 본업을 마다하고 자선사업가로 커리어 방향을 바꾼 데에는 멜린다의 공이 컸다. 멜린다는 1998년 미국 법무부가 제기한 반독점 소송에 휘말리며 ‘독점 자본가’라는 비판에 시달리던 남편을 설득해 2000년 1억 달러를 기부, 자선단체인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했다. 하지만, 소송을 벌이는 와중인데다 40대라는 젊은 나이에 천문학적 기부를 한 것을 두고 일각에선 ‘고도의 홍보작전’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선사업은 최소한 쉰 살이 넘은 원로들이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 속에서도 멜린다는 남편 게이츠를 전면에 내세워 자선 사업 규모와 영역을 넓혀갔다.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기부금 규모는 현재 410억 달러에 달한다. 게이츠 부부가 이 재단에 기부한 금액은 지난해까지 총 315억 달러. 지난해에만 13억 달러를 기부했다. 2010년 게이츠는 자신의 오랜 멘토인 버핏과 함께 세계 부호들의 재산환원 모임 ‘더 기빙플레지(The Giving Pledge)’를 만들어 자산 대부분을 재단에 기부하고 세 자녀에게는 극히 일부만 상속하기로 했다. 출범 첫해 52명으로 시작해 현재 15개국 138명의 슈퍼 갑부들이 회원으로 합류했다. 2012년에는 마크 저커버그도 이 모임의 멤버가 됐다.
빌과 멜린다는 1987년 뉴욕에서 열린 MS 언론 홍보행사에서 사장과 직원으로 처음 만났다. 이들은 1988년부터 비밀 연애를 시작해 1994년 결혼했다. 댈러스 중산층 가정 출신인 멜린다는 듀크대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취득해 하버드대 중퇴인 남편 게이츠보다 최종 학력이 높다. 1996년 첫 아이 출산을 계기로 MS를 퇴사한 멜린다는 게이츠의 아내가 아닌 자선재단의 이사장으로 제3세계의 빈민 구호와 질병 퇴치에 적극적으로 앞장서며 자선사업을 개척하고 있다. 그 결과 멜린다는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3위에 2년 연속(2014·2015년) 선정되기도 했다.
전재산 환원에 앞장선 멜린다는 저커버그 부부가 딸의 출산 소식과 함께 페이스북 지분 99%를 기부하겠다고 밝히자 “당신들이 오늘 보인 모범은 우리와 전 세계에 영감이 될 것”이라며 “맥스와 오늘 태어난 모든 아이는 우리가 현재 아는 세계보다 더 나은 세계에서 자라날 것”라고 찬사를 보냈다.
그의 주된 관심분야는 에이즈, 말라리아, 풍토병 등 질병 퇴치를 위한 연구와 교육 분야다. 게이츠 부부는 에이즈 치료제 개발에 연간 4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으며 지난 5월 면역치료제를 개발하는 독일의 생명공학기업 큐어백에 5200만 달러를 투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