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자신이 속한 기독민주당(CDU) 연례총회에서 10분 동안 1000여명 당원들의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지지율 하락세를 면치 못하던 그가 이날 ‘격한(?)’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난민 유입을 줄이겠다” 는 발언 때문이었습니다.
메르켈 총리는 이날 “독일로 유입되는 난민 수를 가시적으로 줄이겠다”면서 “어떤 강한 나라라도 난민들을 무제한으로 수용할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필요하다면 국경도 통제하겠다고도 했습니다. 사실상 그가 내세웠던 난민 수용 정책 방향을 수정한 겁니다. 메르켈 총리는 내전을 피해 유럽으로 몰려드는 중동·아프리카 난민들을 “조건 없이 수용하겠다”고 밝히면서 ‘난민들의 어머니’란 별칭을 얻었습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얼마 전 메르켈 총리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미국 타임이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으며 지난 10월에는 노벨평화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죠. 모두 시리아 난민 사태 해결에 앞장섰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습니다.
그랬던 메르켈 총리가 갑자기 마음을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요. 거기에는 갈수록 난민 수용에 냉랭해지는 자국 분위기가 한몫했다는 지적입니다. 실제로 메르켈 포용정책에 힘입어 올해 들어 11월 말 현재 독일 난민 신청자는 100만 명에 육박합니다. 별다른 대책이 없다면 내년에는 이 숫자가 더 늘어 150만 명에 달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세계경제연구소(IfW)에 따르면 독일이 난민수용을 위해 연간 투입하는 비용은 최소 250억 유로에서 최대 550억 유로로 전망됩니다. 이는 독일 국내총생산(GDP)의 1.6%에 해당하죠. 메르켈 총리의 무제한 난민 수용방침에 독일의 경제적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파리 테러가 시리아 난민을 가장한 테러범의 소행으로 밝혀지면서 난민 정책에 대한 여론은 악화될 대로 악화됐습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난민 수용 범위를 제한해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제기됐고요. 그 결과 난민 위기가 불거지기 전만 해도 2017년 총선에서 메르켈이 4기 연속 장기집권에 성공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습니다만 지난 11월 말 여론조사 결과 차기 총리로 메르켈을 반대하는 비율은 48%로 찬성보다 4%포인트 높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난민 정책 때문에 사실상 메르켈 총리가 궁지에 몰리게 된 것이죠.
이날 메르켈은 10분간의 박수갈채를 받고 난민 정책에 대한 내부 비판을 잠재우는 데 성공했지만 ‘난민의 어머니’ 메르켈이 난민 문제 해결에서 서서히 발을 빼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남습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메르켈이 이날 총회에서 당원들의 우려를 누그러뜨리고 2017년 선거에 앞서 당을 단합시키는 역할을 했지만 그가 난민위기에 어떤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남게됐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메르켈 총리가 지구촌 최대 난제인 난민문제에 가장 먼저 앞장선 만큼 더 이상의 변심은 없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