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이 에스크로계좌의 약점을 이용해 사기행각을 벌이는 대부업체의 편의를 봐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특히 이 계좌의 관리 담당자가 예금주가 아닌 제3자에게 사전 압류 정보를 제공해 추가 압류 직전 예금 인출이 이뤄진 정황도 포착됐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변칙적 에스크로계좌를 운영하고 있다. 에스크로계좌는 흔히 전자상거래에 쓰이는 안전거래 계좌로, 구매자가 판매자에게 물건을 제대로 전달받았는지 확인한 후 판매자에게 대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하지만 우리은행은 업계에서 잘 쓰이지 않는 형태의 에스크로계좌를 만들어 대부업체에 유리한 방식으로 운영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은행에 따르면 한국저당권거래소는 지난 10월 28일 굿플러스대부에 빌려준 20억원을 받지 못했다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굿플러스대부 명의의 에스크로계좌에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을 접수했다.
압류된 굿플러스대부 명의 통장의 실질적 소유자는 현대커머셜과 OSB저축은행이다. 우리은행-굿플러스대부-대주단(현대커머셜·OSB저축은행) 등 3자는 계좌 개설 시 채무자(굿플러스대부)가 채권자(대주단)에게 빌린 자금을 임의대로 인출할 수 없도록 계약을 맺었다. 다시 말해 실질적 인출 권한은 현대커머셜과 OSB저축은행에 있다.
한국저당권거래소에서 압류 설정 당시 굿플러스대부 명의의 우리은행 계좌에는 47억원이 남아 있었다. 문제는 같은 날 압류 설정 초과 금액인 27억원이 대주단의 계좌로 빠져나갔다는 사실이다.
이후 굿플러스대부 명의의 통장에 다른 피해자의 추가 압류 및 가압류가 접수됐고, 남은 자금의 소유권을 가리는 혼합공탁이 진행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계좌 관리를 담당한 A 직원이 20억원의 압류 직후 이 사실을 현대커머셜과 OSB저축은행에 알렸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확인 결과 A 직원은 “에스크로 계약에 따라 관련인인 현대커머셜에 계좌 압류 사실을 통보했다”고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러나 우리은행이 밝힌 공식 압류 통보 절차는 다르다. 우리은행 측은 “은행에서 압류 사실을 등록하면 지급정지 사유가 발생한 것에 대해 예금주(굿플러스대부)에게 당행 시스템을 통해 자동으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SMS) 형식으로 통보된다”고 답했다. 우리은행 측의 해명대로라면 A 직원은 예금주가 아닌 제3자에게 압류 사실을 알려준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은행 측은 법률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계좌 명의 사업자와 실제 주인이 다른 계좌를 개설해주고, 압류 정보를 명의인 외 제3자에게 제공했다는 점에서 일부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