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발(發) 재계의 인수합병(M&A) 열풍이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대부분의 M&A가 자금 흐름과 연관이 깊은 만큼 금융권의 움직임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특히 정부와 금융권이 주도하는 기업 구조조정의 칼끝이 조선·철강·해운·석유화학 등 다양한 업종을 조준하고 있어 국내 산업 전반에 걸쳐 파상적인 M&A가 예고되고 있다.
◇17년 만에 다시 등장한 ‘옥석 가리기’= 기업 구조조정 범정부 협의체의 좌장 격인 금융위원회는 신속한 옥석 가리기를 통해 우리 경제의 체질을 개선할 것이라고 누차 강조하고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4일 열린 금융개혁 기자간담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은 자구노력을 전제로 채권은행이 재무구조개선을 지원해 살릴 것”이라면서 “지속 가능하지 않는 기업은 빨리 정리해 시장 불안감을 해소하고 우리 경제의 부담을 줄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기업 구조조정에 적극성을 띈 것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17년 만이다. 다만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구조조정의 큰 틀은 정부가 정하고, 시장이 자율적으로 M&A를 진행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것이 과거와 다른 점이다. 1998년 당시 정부는 여러 부처가 모여 산업 지도를 그린 후 기업 구조조정에 직접 개입했다.
업계는 정부가 바라는 자율적 산업 구조조정의 모범 사례로 삼성그룹의 사업 재편을 꼽고 있다. 삼성은 지난해 말부터 두 차례에 걸쳐 한화그룹, 롯데그룹에 각각 화학 계열사를 매각했다. 이에 따른 기업 통폐합으로 석유화학 산업이 자연스럽게 구조조정 됐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최종 목표는 매각… “정상화 지원부터”= 대우조선해양, 성동조선 등 조선 업종에 최근 집중되고 있는 금융권의 지원은 제값 받고 팔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읽힌다. 매각을 염두에 둔 지원인 만큼 이들 기업이 한꺼번에 M&A 시장에 매물로 나올 가능성도 크다.
특히 부실기업 채권 대부분을 보유한 KDB산업은행은 M&A의 마중물이 될 전망이다. 산은이 5% 이상 출자한 기업은 출자전환 34곳, 중소·벤처투자 343곳 등 모두 377곳이다. 지분 규모는 9조2000억원(장부가 기준)에 달한다. 이 가운데 15% 이상 지분을 가진 기업은 118곳(지분가액 2조3000억원)이다.
산은은 대우조선해양, 항공우주산업(KAI), 한국지엠 등 장기간 보유한 91개 비금융회사 지분을 2018년까지 3년간 집중적으로 매각한다. 구체적으로는 출자전환 후 정상화한 기업 5곳과 5년 이상 투자한 중소·벤처기업 86곳이다.
한국수출입은행이 대주주인 성동조선(70.7%)·대선조선(67.2%)도 매각을 전제로 채권단의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고강도 자구계획, 커지는 M&A 시장= 경기 침체, 업황 부진 등으로 살림이 어려워지면서 고강도 자구계획을 세워 핵심 자산을 매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동부건설, 동부익스프레스, 현대증권, KDB대우증권 등이 대표적이다.
동부건설은 최근 부실채권·부동산 전문투자회사인 파인트리자산운용을 우선협상자로 선정하는 등 매각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동부익스프레스는 지난 9월 현대백화점이 47000억원의 입찰가를 단독 제출한 후 매각주체인 KTB프라이빗에쿼티(PE)와 협상을 진행해 왔다. 현대백화점과 KTB PE는 조만간 본계약을 체결할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매각이 무산된 현대증권은 내년 상반기 다시 한 번 새 주인을 찾는다. 올해 M&A 시장의 최대어로 꼽히는 대우증권은 연내 매각이 유력시 되고 있다. 지난 2일 예비입찰 결과 KB금융지주,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금융지주가 예상대로 참여했다. 대우증권 노조가 주축이 된 우리사주조합도 입찰에 응하는 등 흥행에 성공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정부가 나서 기업 구조조정 고삐를 죄는 만큼 M&A 시장이 상당히 탄력받고 있다”며 “본 게임은 내년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M&A가 활기를 띠면서 자연스러운 산업 구조조정이 진행될 전망”이라면서 “다만 정부와 채권은행 주도로 기업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내년에 치러지는 총선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