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어떤가. 웰빙이라는 단어는 어느덧 잊힌 단어가 됐다. TV만 봐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쏟아지고 있는 요리 프로그램들을 살펴보자. 제대로 된 요리보다는 쉽고 간편하게, 있는 재료로 최대한 빨리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과정은 중요치 않다. 결과만이 중시된다. 중요한 재료를 빼먹더라도 비슷한 맛을 내는 것이 엄청난 비법인 양 포장된다. 그때마다 패널들의 호들갑스러운 감탄사가 연발되는 것은 덤이다.
물론 이 같은 방송 트렌드는 최근 1인 가구가 증가하는 추세를 100% 반영함은 물론이다. 혼자 사는 사람이 많아지니 당연히 정성껏 음식을 차릴 필요가 없다. 값 싸고 배부르면 그만이다. 사회가 삶의 여유로움과는 먼 쪽으로 흘러가고 있으니 이를 반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에 방송을 보며 한껏 웃어도 뒷맛이 씁쓸하고 슬프기조차 하다.
살아남는 것, 바로 생존 그 자체가 화두인 시대가 됐다. 고용은 밑바닥으로 치닫고 있으며, 취업률을 올리기 위해 시간제 일자리, 인턴제, 계약직을 장려하자 고용의 질도 낮아졌다. 현재 경제활동 인구인 20~40대의 현실이다.
얼마 전 라이나생명 본사인 시그나코퍼레이션(Cigna Corporation)이 조사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 30대들의 ‘웰빙 지수’가 아시아·태평양 지역 30개국 중 가장 낮았다. 이 회사가 조사한 ‘시그나360도 웰빙지수’는 신체건강, 사회관계, 가족, 재정상황, 직장과 관련된 건강 및 복지 등의 5가지 상태에 대한 응답자의 전반적 인식을 측정해 지수화한 것이다. 조사 결과 한국의 웰빙 지수 평균은 61.8점이었지만 30대는 59.9점으로 전 연령대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시그나 그룹은 “일명 ‘낀 세대’로 불리는 30대의 경제적 여건, 불안정한 직장생활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어 전반적인 웰빙 수준이 낮다고 평가했다”고 조사 결과를 풀이했다.
우리나라는 2017년부터 고령사회에 접어들어 2019년까지 매년 15만명 이상 일자리에서 퇴직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한, 오는 2026년부터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은 기업에 노동력 부족을, 개인에게는 노후생활의 불안을 가져온다. 또한, 국가적으로는 재정 부담이 커짐에 따라 경제성장의 둔화가 우려된다. 우리나라의 조세수입 중 근로계층으로부터 거둬들이는 세금은 전체의 30%에 달한다. 따라서 근로인구의 감소는 조세수입의 감소로 직결된다.
재정지출은 갈수록 급격히 늘어나는데 나라살림으로 들어오는 조세수입이 줄어든다면 결과는 자명하다. 국가는 모자라는 돈을 국채로 발행해 조달하려 할 것이며 이 경우 국가부채가 늘어나 경제를 압박하게 될 것이다. 결국 ‘재정적자 증가→이자부담 상승→국채 증가와 경제성장 둔화→재정적자의 증가’라는 악순환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된다면 국민의 삶의 질은 크게 하락할 것이 분명하다.
정부도 이 같은 문제를 알고 있다. 그러나 해법으로 제시한 것은 당혹스럽기조차 하다. 최근 새누리당이 청년들의 사회 진출을 앞당기기 위해 초·중등학교 입학 연령을 낮추고 학제를 2년가량 줄이는 내용의 개선책을 정부에 주문했다. 저출산·고령화 문제 해결을 위한 중장기 대책 차원이지만 파장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정부는 올 초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저출산으로 인한 생산인구가 감소하고 있다며 ‘9월 신학기제 도입 등 학제 개편’ 검토를 발표한 바 있다. 또 지난 8월 새누리당 친박 모임인 ‘국가경쟁력강화포럼’ 세미나에서는 김대환 노사정위원장이 청년들의 노동시장 진입 시기를 앞당기기 위한 학제 개편 필요성을 주장하는 등, 그간 줄기차게 추진해온 안이다.
이 같은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아이를 안 낳는 것이 취업이 늦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를 낳고 살아갈 사회적 환경이 되어야 아이를 낳는 것이지, 단순히 사회 진출을 앞당긴다고 해서 해소될 문제가 아니라는 반응이다.
개선책의 근간은 '일찍 졸업하면 취업을 일찍하고, 결혼을 일찍하니 아이도 많이 낳을 수 있다'는 단순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왜 아이를 안 낳게 되었는지,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살펴보고 해결하려는 진중한 과정은 좀처럼 찾기 힘들다. 더 나아가 우리 아이들을 좋은 삶을 살게 하기 위한 하나의 인격체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유지시키기 위한 하나의 부품처럼 보는 경박한 시각에 얼굴마저 붉어진다.
웰빙(well-being)의 반대말은 ‘일빙(ill-being)’이다. 병든 삶 자체를 개혁하기보다는 체념을 하며, 닥친 상황만 해결하며 사는 모습을 일빙이라고 지칭한다.
웰빙을 할 것인가, 일빙을 할 것인가. 우리의 삶을, 후대의 삶을 좌우할 사안에 두 방식 중 어떤 방식으로 접근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