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고(故) 스티브 잡스 애플 설립자의 유산을 서서히 지워나가고 있다. 잡스가 생전에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것들이 신제품 발표 행사 때마다 속속 등장하고 있다.
애플은 9일(현지시간)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한 대규모 신제품 공개 행사에서도 잡스의 유지에 반하는 제품을 내놨다. 잡스는 지난 2007년 아이폰을 세상에 처음 내놨을 때 “스타일러스 펜은 잃어버리기 쉽다. 누가 그것을 원하겠는가”라며 “우리는 이미 손가락이라는 훌륭한 도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스타일러스 펜을 도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로부터 8년 후인 이날, 애플은 사실상의 스타일러스 펜인 ‘애플펜슬’을 공개했다. 애플펜슬은 새 아이패드인 ‘아이패드 프로’에서 그래픽 디자인 작업과 사진 편집, 문서 작성 등의 작업을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잡스는 모바일 기기에 스타일러스 펜이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반기를 들어 아이폰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제 애플은 다시 정반대의 행보를 보인 것이다.
쿡이 잡스의 유산을 지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0년 잡스는 애플 실적 발표 당시 10인치보다 작은 태블릿이 필요하다는 말에 “그런 제품은 의미가 없다”며 “사포를 같이 넣어 사용자 손가락의 4분의 1을 갈아야만 작은 태블릿을 쓸 수 있을 것”이라며 일축했다. 그러나 2년 후 애플은 기존 아이패드의 3분의 2 크기인 7.9인치짜리 ‘아이패드 미니’를 도입했다.
이는 잡스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기 만의 색깔을 찾으려는 쿡 CEO의 생각이라기보다는 애플이 글로벌 트렌드의 변화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잡스는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 등 이른바 ‘패블릿(스마트폰+태블릿)’ 제품을 혐오해 아이폰 화면 3.5인치를 고집했다. 손에 딱 잡히는 스마트폰이 이상적이라는 신념에서다. 그러나 애플은 이후 아이폰5와 아이폰6 등 지속적으로 화면 크기를 키웠다. 특히 대화면을 적용한 아이폰6 시리즈는 시장에서 대성공을 거뒀다.
쿡 CEO는 지난 2011년 잡스 사망 당시 애도사에서 “그가 나에게, 그리고 모두에게 했던 마지막 조언은 ‘자신이 무엇을 할지 묻지 말고 옳은 일을 하라’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미국 경제전문 방송 CNBC는 잡스의 유산을 지우는 것이 사실상 마지막 그의 충고대로 하는 것일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