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반상 제도는 대한민국 건국을 거치면서 급격히 무너져 오늘날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SK그룹의 일부 계열사의 상황은 다른 듯하다. 현대판 반상제도를 부활시킨 것이 아닌지 귀를 의심케 한다.
대표적인 곳이 SK플래닛이다. SK플래닛의 핵심보직을 다른 관계사에서 내려온 인사들이 독식하면서 묘한 갈등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SK플래닛은 미래성장 사업인 플랫폼 분야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2011년 한몸이던 SK텔레콤에서 떨어져 나간 조직이다. 당시 SK플래닛 분사 배경에는 규제의 덫이 많던 이동통신(MNO)사업과 비통신사업을 분리해 신산업에 속도를 내기 위한 의도가 담겼다. 분사 4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현재 위치는 이상한 방향으로 바뀌었다. 지주사인 SK주식회사의 손자회사로 전락한 SK플래닛은 확실한 종속관계로 엮여 있다.
SK플래닛 초기 OC(Open Collaboration)추진센터장은 김영철 SK브로드밴드 경영지원부문장이 맡았다. 이후 김 센터장은 CFO로 영전했다. SK플래닛 COO((Chief Operating Officer)자리에도 SK텔레콤 출신의 장동현 마케팅 부문장이 선임된 뒤 다시 SK텔레콤 대표이사로 승진했다. 현 SK플래닛 COO에는 서성원 전 SK텔링크 대표이사가 이동해 업무를 보고 있다.
이처럼 SK플래닛의 핵심보직은 모회사인 SK텔레콤을 비롯해 SK브로드밴드, SK텔링크 등 관계사의 임원들이 가는 무대로 자리잡는 모양새다. 온라인쇼핑몰 11번가를 운영하는 SK플래닛의 자회사 커머스플래닛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초대 커머스플래닛의 수장은 온라인 광고대행사인 에어크로스 출신의 이준성 대표이사다. 2013년 인사에서는 SK플래닛 커머스 사업부 사업단장을 맡았던 김수일 씨가 커머스플래닛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김 대표는 선경으로 입사해 SK텔레콤에서 상품기획팀 상무를 거쳤다. 또 커머스플래닛 플랫폼 매니지먼트 총괄에는 김호석 SK플래닛 경영전략실장이 임명됐다.
일부 직원들 사이에서 ‘SK플래닛과 자회사인 커머스플래닛의 핵심보직은 모회사나 관계사에서 사전예약을 잡아놓은 것 같다’는 비야냥 섞인 말이 나올 정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SK플래닛과 커머스플래닛 내부 곳곳에서 불만이 쌓여가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수년간 주요 요직을 내부 승진이 아닌 외부 출신이 주로 차지하면서 커머스플래닛 직원들의 사기도 땅에 떨어졌다는 후문이다. 일부에서는 임직원 간 불협화음을 넘어 회사를 떠나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업계 일각에서는 SK그룹 내에서 SK플래닛은 서자로, 자회사인 커머스플래닛은 얼자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신분 상승의 한계를 아는 서얼 출신이 그 이상의 가치를 실현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조직은 살아있는 생물과 같다. 이에 비춰볼 때 SK플래닛은 내부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고 성취감을 고취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능력을 존중하고 차별적 요소를 제거하지 않는다면 그 조직의 미래 또한 담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