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사회, 경제, 학계 등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중국 여성들이 적지 않다. 수장이 된 경우도 찾아보기 어렵지 않은 것은 중국에서 여성의 위상이 높다는 것을 방증하지 않느냐고 하자 양 부관장은 손사래를 치며 기자의 표현을 고친다.
“여성의 위상이 높다는 말보다는 여성과 남성의 위치가 차이가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는 것.
역사가 길지는 않아도 일관되게 양성평등 문화를 심기 위해 나서온 정부의 노력도 강조했다.
양 부관장은 “신중국 설립(1949년) 이후 여성의 위상 높이기에 대한 인식이 갖춰지기 시작했고 똑같이 교육받고 혼인의 자유도 갖게 됐다. 마오쩌둥(毛澤東)은 ‘하늘을 떠받치는 인구의 절반이 여성’이란 주장으로 교육과 혼인 등에서의 평등을 법적으로 보장하기 시작했다.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도 이는 유지됐다. 그리고 장쩌민(江澤民) 주석 때부터는 양성평등이 비로소 국가 정책으로 규정되면서 여성의 자유 신장과 능력 발휘 속도가 더 빨라졌다”고 설명했다. 2013년 환구시보에 따르면 중국 내 여성 관리직 진출은 전체의 51%로 세계 최고 수준으로 나타났다. 전 세계 평균의 배에 달한다. 남녀평등의 묘를 제대로 보여주는 수치다.
양 부관장은 ‘최초’의 이름으로 중국 여성들이 활약한 예도 공들여 밝혔다. 쑹칭링(宋慶齡)은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국가부주석 자리에 올랐으며 1952년엔 대포를 모는 여성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첫 트럭 기사, 첫 기차 기관사, 또한 2012년 배출된 첫 여성 우주인까지. 부녀아동박물관 내 연구인력들이 중국 사회 건설에 도움이 된 100명의 최초 여성들을 정리해 책자로 만들었다. 인터뷰에 배석해 이 내용을 부연 설명한 연구소 소장이 남성이란 점은 꽤 신선했다.
중국에서는 그렇다면 여성다움, 여성성이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양 부관장에게 물어봤다.
그는 “한국에서는 섬세함과 유연함을 여성이 갖는 특성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안다”면서 “중국에서는 여성의 정신을 네 가지로 정리한다. 자립, 자강, 자신, 자조가 그것이다. 국가에서 정한 것이지만 여성들 또한 동의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슈퍼우먼에 가까운 자신의 생활을 들려줬다. “사회에 나가서는 최선을 다해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엄마로서 아내로서 해야 할 일들을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퇴근한 이후에는 밥하고 빨래도 다 한다.”
이는 중국 남성들의 인식이 다른 인근 국가들에 비해 ‘우월하기’ 때문이란다. 중국 남성들은 같이 일하는 여성인 아내를 도와 집안일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것.
사회의 한 축인 여성들이 어떻게 권익을 신장시켜 왔는지, 그리고 양성평등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위해선 여성(사)박물관을 짓는 것이 필수라고도 조언했다. 그러면서 중국처럼 ‘국립’으로 지을 것을 당부했다. 그래야 추진력이 흩어지지 않으며, 예산 문제도 좀 더 수월하게 풀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