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무심코 들려오는 음악에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귓가를 감도는 아름다운 선율에 가벼운 전율을 느끼며 나중에 꼭 이 음반을 사야겠다고 다짐하고 이내 발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짐했던 사실조차 까맣게 잊곤 한다. 한참 뒤에야 우연히 같은 음악을 듣고 ‘어디선가 들어봤던 음악인데’ 하고 반추해봐도 기억이 곧잘 떠오르지 않는다.
이와 비슷한 일은 하루에도 수없이 일어난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하지 않던가. 사람의 기억력은 보통 한 시간이면 절반 이상의 내용을 잊어버리는데, 하루가 지나면 7할을, 한 달이 지나면 대부분의 기억을 잊는다고 한다.
인간이란 어찌 이리도 불완전할까 한탄해봐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우리의 뇌는 기억보다 망각에 익숙하며,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것만 기억하고 나머지는 잊도록 진화해왔다.
문제는 우리가 현대를 살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는 정보와 지식이 생활의 필수 에너지로 작용하는 사회이며, 얼마나 더 많은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기억해낼 수 있느냐가 가장 성공적인 생존법이 될 것이다. 하지만 망각의 본성을 거스르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은 법. 그래서 우리는 기억을 저장할 메모를 남긴다.
이를테면 메모란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나 어떤 일에 감동했을 때, 혹은 좋은 생각이 떠올랐을 때 그 느낌과 생각을 기억하도록 스스로에게 ‘잊지 말라’고 지시를 내리는 것과 같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정보를 받아들이지만, 기록해두지 않으면 내 것이라고 믿었던 정보도 기억 속에서 물고기처럼 빠져나가고 만다. 하지만 순간순간 메모를 남겨둠으로써 어둠 속으로 익사하는 기억을 건져 올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