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전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자신의 사퇴 권고가 추인됐다는 소식을 김무성 대표로부터 직접 전해들은 뒤 곧바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정론관으로 이동, 미리 준비해 둔 사퇴회견문을 차분한 어조로 읽었다.
그는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으며 일부 대목에선 목소리가 다소 떨리기도 했다.
'원내대표직을 내려놓으며…'로 시작한 회견문은 1000자 안팎으로 A4 용지 2장에 정리됐다.
이날 회견문의 백미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제1조 제1항을 언급한 대목. 그는 "평소 같았으면 진작 던졌을 원내대표 자리를 끝내 던지지 않았던 것은 제가 지키고 싶었던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법과 원칙, 그리고 정의"라며 "정치생명을 걸고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기술돼 있다. 박 대통령의 '6·25 국무회의 발언'으로 거센 사퇴 압박에 직면했으면서도 2주일 가까이 버틴 것은 자리에 대한 미련이 아니라 '민주공화국 원칙'의 수호 의지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 표현에는 자신의 사퇴를 요구한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민주공화국'이라는 대한민국의 정치체제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비판이 포함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거스르면서 입법부에 속해 있고, 의원들이 뽑은 여당 원내대표를 독재국가나 왕정체제의 국가에서처럼 대통령이 '찍어 내리듯' 물러나게 했다는 유 원내대표의 인식이 깔린 것이라는 풀이다.
자신이 한때 '주군'으로 모셨던 박 대통령에 대한 '정면 반박'인 셈이다. 이날 사퇴를 계기로 유 전 원내대표를 '비박(비박근혜)'이 아니라 '반박(반 박근혜)'으로 돌아섰다고 평가하는 것도 이와 맥락이 닿는다.
그동안 유 원내대표는 청와대와 친박계의 집요한 사퇴요구에도 "사퇴할 이유를 못 찾겠다"고 물러서지 않았다. 심지어 김무성 대표에게 "차라리 내 목을 쳐달라"고까지 했다는 후문도 나돈다.
더 나아가 유 전 원내대표의 사퇴의 변은 자신의 정치철학을 구현하기 위한 독자적인 길을 본격적으로 걸어가겠다는 것을 암시한 것이라는 분석도 뒤따랐다. 독자 세력화 시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늘 그렇듯 사퇴 회견문도 직접 쓴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 국회 운영위원회 회의를 마치고 의원회관에 틀어박힌 채 자정까지 문구를 다듬었다는 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