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음료인 식초는 아이러니하게도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술로 만든다. 중간에 발효라는 신비한 과정이 있다. 당분이 알코올 발효를 통해 술이 되고, 술이 초산발효를 통해 식초가 되는 것이다. 예전에는 술과 함께 식초도 집에서 많이 만들어 먹었다. 부엌의 부뚜막 등 따뜻한 곳에 ‘초두루미’라 불리는 식초를 안치는 항아리를 두고 가끔 술을 넣어 주면 맛있는 식초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자연적인 초산 발효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 천연발효식초다. 초산발효는 알코올 도수 4~8%의 술을 30℃ 전후의 온도를 유지하고, 햇볕은 차단된 곳에서 공기를 통하게 해주면 잘 이뤄진다. 이때 ‘종초(種酢)’라 불리는 살균되지 않은 천연발효식초를 조금 넣어주면 더 쉽게 된다.
한국에서 천연발효식초는 흔하지 않다. 마트에서 쉽게 접하는 양조식초는 천연발효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희석식 소주 원료인 주정에 물을 넣어 희석한 다음 초산균을 투입하고 공기를 강제로 불어 넣어 속성 발효시킨 것이다. 여기에다 현미 엑기스를 넣으면 현미양조식초, 사과 엑기스를 넣으면 사과양조식초가 되는 것이다. 세계적 현미식초인 일본 흑초는 현미로 술을 담근 다음 이를 천연발효시켜 오랜 숙성과정을 거쳐 만든다. 유럽과 미국 등의 좋은 포도식초나 사과식초도 포도나 사과로 술은 담은 다음 천연발효시켜 만든다.
이러다 보니 술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팔리는 고급 식초, 비싼 식초는 거의 모두 일본이나 유럽 등으로부터 수입된 것들이다. 식초는 술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부가가치를 술보다 더 높일 수 있다. 그리고 당연히 좋은 농산물로 만든 좋은 술을 발효시켜야 좋은 식초가 나올 수 있다. 오래전부터 우리에게도 여러 가지 좋은 술과 맛있고 몸에 좋은 식초가 있었다. 그런데 일제 침탈 이후 가양주 문화의 단절과 함께 좋은 술과 식초가 사라졌고, 산업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된장, 고추장, 젓갈 등 다양한 발효식품 문화를 생각할 때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늦었지만 우리 술과 천연발효식초를 연계해 산업화하는 방안을 연구해 보자. 식초는 조미료와 건강음료로 술보다 활용성이 넓고, 사용 원료도 곡식과 과일뿐 아니라 야채와 산야초 등 다양하다. 농촌에서 술만 만드는 것보다 술과 식초를 동시에 만들면 시장 확보와 농산물 활용, 고부가가치화 등에서 유리할 것이다. 다만 술과 식초를 동일한 공간에서 발효시키면 술맛이 나빠질 수 있기 때문에 공간 분리 등의 주의는 필요하다. 최근 우리 술과 천연발효식초를 연구하고 만드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에 대한 적절한 지원이 낙후된 한국의 농업과 농촌경제를 살리는 방안의 하나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