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참에 원·엔 환율의 장기 추세와 수출과의 관계를 잘 짚어볼 필요가 있다. 최근 원·엔 환율은 100엔당 900원 내외이다. 2011년경에 100엔당 1500원 정도까지 올랐던 것을 생각하면 최근 원화 대비 일본 엔화의 가치가 40% 정도나 떨어졌다. 해외에서 일본 상품과 경쟁해야 하는 한국의 수출기업이 가격경쟁에서 불리해진 것이다. 일본 기업은 달러나 현지 통화 기준으로 수출가격을 조금 깎아줘도 엔화로 환산한 판매 수입은 늘어나기 때문이다.
현재 원·엔 환율인 100엔당 900원은 2011년경에 비해서는 크게 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2006~2007년에 원·엔 환율은 800원 내외를 장기간 유지한 적이 있다. 이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원·엔 환율은 오히려 조금 오른 것이다. 원·엔 환율을 보다 장기적으로 보면 더 극적인 변동을 보였다. 3저 호황의 끝 무렵인 1989년에는 100엔당 460원, 1970년대 후반에는 100엔당 200원 정도에 불과했다. 그리고 1969년에는 공식 환율 기준이기는 하지만 100엔당 85원 정도로 이때는 한국의 원화 가치가 엔화보다 더 높았다. 즉, 1970년부터 지금까지 45년간 한국의 원화는 일본 엔화에 비해 적게는 10배 많게는 15배 정도나 가치가 하락했다. 중간에 기복은 있었지만 원·엔 환율은 계속 오르고 한국 원화의 가치는 계속 떨어져 온 것이다.
이 기간 동안 한국의 수출이 크게 늘어났지만 한국만 수출이 늘어난 것이 아니다. 일본도 제조업 강국으로 수출을 계속 늘려 한때 세계에서 경상수지 흑자를 가장 많이 내는 국가이기도 하였다. 한국은 장기간에 걸쳐 원화 가치를 떨어뜨리며 수출을 늘려오는 동안 일본은 반대로 엔화 가치를 올리며 수출을 증가시켰다. 환율이 올라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수출기업은 수익이 늘지만, 국민은 수입물가 상승으로 가처분소득이 줄고 국부의 대외가치도 감소한다. 결국 한국의 경우 수출이 늘면서 수출기업은 쉽게 돈을 벌게 만들었지만 대다수 국민은 별로 혜택을 보지 못한 것이다. 반면 일본의 경우 수출기업은 어렵지만 국민 전체가 혜택을 보며 수출을 늘려온 것이다. 한국과 일본, 어느 나라가 경제정책을 잘한 것이고, 어느 나라 기업이 경쟁력이 강하냐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환율이 반대로 움직였던 한국과 일본은 모두 성공적인 수출 주도형 국가였다, 또한 양국의 수출 상품은 자동차, 반도체, 전자제품 등 국제시장에서 경합하는 것이 많다. 이렇게 보면 장기적으로는 환율이 수출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한국의 수출 추이를 봐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 원화가 강세를 보였던 1980년대 후반이나 2005~2007년에도 한국의 수출은 좋았다. 수출은 환율보다는 세계 경기와 기업의 기술 경쟁력 등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의 수출기업은 얼마 전까지의 엔화 강세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급격한 엔화 약세가 주는 충격이 클 것이다. 또한 단기적으로는 수출에도 어느 정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렇다고 인위적으로 원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은 쉽지도 않겠지만 바람직하지도 않다. 한국의 원화 가치는 지금까지 충분히 떨어져 왔다. 기업이나 정책 당국이 고환율의 편안함에 계속 안주한다면 기업의 경쟁력은 약화되고 국민은 가난해지고 내수는 계속 위축될 것이다. 장기적으로 성장 잠재력이 떨어지면서 선진국으로 가는 길도 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