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의 진화] 80여년의 트로트, 오늘 무엇으로 사는가?

입력 2015-05-08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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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가 어때서’, ‘무조건’, ‘어머나’, ‘동백아가씨’, ‘남행열차’, ‘시계바늘’, ‘안동역에서’. 이 노래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트로트라는 점이다. 그리고 바로 한국갤럽이 2014년 10월 2일부터 29일까지 전국 만 13세 이상 남녀 17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애창곡 조사에서 10위 안에 포진된 곡이라는 점이다. 7곡의 트로트가 포함돼 있다. 그만큼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음악이 바로 트로트다. 4월 26일 방송된 SBS ‘인기가요’에 엑소, EXID, 달샤벳, 블락비 등 최고 인기 아이돌그룹과 함께 무대에 오른 가수 소유미(23)는 트로트 ‘흔들어 주세요’를 불러 눈길을 끌었고 걸그룹 오렌지카라멜의 리지는 지난 1월 25일 방송된 ‘전국노래자랑’에서 ‘쉬운 여자 아니에요’를 부르며 트로트 가수로서 첫선을 보여 관심을 끌었다.

트로트의 강한 생명력과 변화하는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신의 음악 트렌드를 좇는 20대 대학생들도 노래방을 찾으면 트로트로 마무리하고, 중장년의 직장인 회식 자리에서 트로트 한곡조 부르지 않는 사람이 없다. 물론 노년층도 마찬가지다.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트로트는 오랜 역사 속에 변화를 거듭해왔다.

트로트(Trot)는 사교댄스의 스텝 또는 그 연주 리듬을 일컫는 폭스 트로트(fox-trot)에서 유래한 말로 ‘라시도미파’의 단조 5음계 혹은 ‘도레미솔라’ 장조 5음계에서 라의 비중을 높인 특징적인 음계를 사용한 노래 장르다. 트로트는 일반적으로 4분의 4 박자를 기본으로 하고 강약의 박자를 넣으며 꺾는 음을 구사하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음악계와 학계에서는 우리 트로트를 일본의 전통가요 엔카(演歌)에 뿌리를 둔 왜색 음악으로 보는 입장과 서양의 폭스 트로트의 영향을 받아 엔카와는 독자적으로 발전한 우리 음악으로 보는 입장 등 여러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1980년대 중반 황병기, 박춘석, 노동은, 민경찬 등 학자, 작곡가, 가수, 사회학자 등 전문가들에 의해 ‘뽕짝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과정에서 트로트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입장들이 개진됐다. 지금도 트로트의 기원과 일본색, 장르적 특성에 대한 견해가 다양하게 존재한다.

1920년대 일본 엔카 번안곡에 이어 1930년대 일제 강점기 때 모습을 본격적으로 드러낸 트로트는 시대를 거치면서 장르적 확장과 수용자와 제작자의 변모, 인식과 시선의 변화 등이 있었지만 강한 생명력으로 여전히 국민의 사랑을 받는 음악으로 자리하고 있다.

1930년대부터 신민요와 차별화된 음악으로서의 트로트가 대중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1930년대부터 일제강점기에는 이애리수의 ‘황성의 적’,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김정구의 ‘눈물젖은 두만강’, 황금심의 ‘알뜰한 당신’, 백년설의 ‘나그네 설움’, 진방남의 ‘불효자는 웁니다’ 등 지금까지 불리는 수많은 트로트 히트곡이 등장했고 국민의 사랑을 받는 고복수·이난영 등 트로트 스타들도 대거 배출됐다.

광복과 해방공간, 그리고 6·25전쟁 등 1940~1950년대에도 현인의 ‘비내리는 고모령’ ‘신라의 달밤’, 황금심의 ‘삼다도 소식’ 등 인기 트로트가 등장했고 이 당시 작곡가 박시춘은 트로트 히트메이커 작곡가로 명성을 날렸다. 이후 TV가 등장하고 미국의 팝 등이 대중의 사랑을 받기 시작한 1960~1970년대에는 ‘동백아가씨’ ‘아씨’ ‘기러기 아빠’의 이미자, ‘돌아가는 삼각지’의 배호, ‘미워도 다시한번’ ‘가슴 아프게’ ‘님과 함께’의 남진, ‘사랑은 눈물의 씨앗’ ‘고향역’ ‘물레방아 도는데’의 나훈아로 이어지는 트로트 스타의 전성시대가 펼쳐졌다. 그리고 이 시기는 박춘석이라는 최고의 트로트 스타 작곡가의 시대이기도 했다. 이후 다양한 음악 장르가 쏟아진 1980~1990년대에는 트로트가 명성과 인기를 유지하지 못하고 퇴락을 길을 걷는 가운데 현철·태진아·송대관·설운도·주현미 등이 중장년층의 사랑을 받는 트로트 가수로서 명맥을 이어갔다.

2000년대 들어 내용과 형식을 달리해 나이든 사람만 좋아한다는 트로트의 한계를 깨며 젊은층도 좋아하는 트로트들이 속속 등장했다. 그 선두에 장윤정이 있었다. 장윤정은 신세대와 중년을 모두 아우르는 ‘어머나’, ‘짠짜라’, ‘꽃’ 등을 연속 히트시키며 트로트의 고정관념을 깨 네오 트로트(신트로트)의 장을 열었고 그 뒤를 ‘샤방샤방’ ‘곤드레만드레’ ‘빠라빠빠’의 박현빈, ‘사랑의 배터리’의 홍진영 등이 이으며 젊은층의 사랑을 받는 트로트로 거듭났다. 최근 들어 빅뱅의 대성, 소녀시대의 서현, 오렌지카라메의 리지 등 아이돌 스타들도 속속 트로트를 부르고 조정민·소유미·이지민 등 20대 젊은 트로트 스타들도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트로트 리듬에 일렉트로닉 댄스 등을 가미한 세미 트로트(semi trot)로 승부해 트로트의 사각지대인 10~20대의 사랑을 받고 있다. 또한 블루스 가수인 한영애나 재즈 가수인 말로 등이 트로트를 리메이크해 트로트의 또 다른 면모를 보이며 수용자층을 확장시켰다.

트로트에 대한 인식 역시 크게 변모했다. 대중문화평론가 이영미는 ‘한국 대중가요사’를 통해 “트로트는 처음에는 개화한 지식인이 받아들였고 도시인과 학력·경제적 여유가 있었던 소시민층의 예술이었다. 미국으로부터 서양풍의 대중가요 양식이 선진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면서 트로트는 뒤떨어진 것, 촌스러운 것으로 인식됐고 ‘뽕짝’이라는 비하적 표현까지 등장했다”고 설명한다.

트로트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급격히 변하면서 트로트 수용층도 변모했다. 일제 강점기 때에는 도시에 사는 지식인들에 의해, 그리고 이후에는 중장년층과 서민들이 주로 좋아하는 음악 장르로 굳어졌다가 최근 들어서는 젊은층도 트로트를 애창하기 시작했다. 트로트는 이처럼 강한 생명력으로 오랫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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