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규 KT 회장이 3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고(故) 스티브 잡스 애플 설립자와의 인연과 KT의 비전 등을 소개했다.
그는 “모바일 반도체에 대한 나의 비전이 없었다면 오늘날 아이폰도 없었을 것”이라는 농담으로 잡스와의 인연을 설명했다.
지난 2004년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의 대표였던 황창규는 잡스의 초대를 받아 실리콘밸리에 있는 애플 본사를 방문했다. 당시 잡스는 인기 제품이던 아이팟을 어떻게 하면 더 얇고 배터리가 오래 가게 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황 회장은 “아이팟은 부피가 매우 컸고 배터리도 두 시간 밖에 가지 않았다”며 “잡스는 아이팟 디자인을 개선하기를 원했고 이미 아이폰도 구상하고 있었다”고 잡스와의 만남을 회상했다.
황 회장은 지난 2002년 나온 이른바 ‘황의 법칙’으로 글로벌 반도체산업계에서 유명인사였다. ‘황의 법칙’은 반도체 메모리 용량이 1년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이론으로, 반도체 성능이 18개월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을 뛰어넘은 것이다. 그가 당시 삼성이 개발하고 있던 플래시메모리칩을 보여주자 잡스는 “이것이 바로 정확히 내가 원하던 것”이라며 직접 화이트보드에 그림을 그려가며 황 회장에게 애플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1시간 가까이 설명했다.
애플이 2007년 아이폰을 첫 출시했을 때 삼성은 플래시메모리와 AP, 디스플레이 패널 등 핵심 부품 공급사로 자리매김했다.
잡스와의 파트너십은 또 황 회장을 한국 비즈니스계의 스타로 만들었으며 한국 메이저 통신업체 KT 회장으로 오르게 한 원동력이 됐다고 FT는 설명했다.
불명예 퇴진한 이석채 전 회장의 뒤를 이어 지난해 1월 취임한 황창규 회장은 어려운 시간을 겪어야 했다. 취임하자마자 KT 개인정보 유출과 자회사 직원 대출사기 등 잇따른 사고로 고객들에게 사과해야 했다. 지난해 적자가 9660억원에 달했던 회사를 살리는 것도 큰 과제였다. 황 회장은 “KT에 합류한 이후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고 중압감을 호소했다.
강력한 구조조정에 힘입어 KT는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주 실적 발표에서 회사는 지난 1분기 2810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한국 이동통신시장이 과포화상태에 다가가고 있어 새 성장동력을 찾는 것이 황 회장의 가장 큰 과제다. 그는 이번 인터뷰에서 에너지와 헬스케어·보안·운송·차세대 미디어 등 5개 미래 서비스에서 희망을 걸면서 “KT는 ‘사물인터넷’ 분야의 리더가 될 수 있다”고 자신했다.
KT는 황의 리더십 아래 5세대(5G) 이동통신망 구축에 베팅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황 회장의 임기 3년 동안 회사는 5G에 4조5000억원을 투자한다. 그는 “5G 기술로 다양한 기기들이 연결될 수 있다면 통신산업은 데이터 트래픽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며 “통신산업 자체는 성숙산업이지만 네트워크와 플랫폼을 통해 여러 산업을 하나로 모여들게 하면 이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뀔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