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1942년 조명암 작사, 이봉룡 작곡 ‘낙화유수’. 남인수가 불렀다. 이 노래가 히트하면서 이정숙의 노래는 ‘강남 달’로 알려지게 됐다. 원래 조명암의 가사는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봄에/새파란 잔디 얽어 지은 맹세야/세월에 꿈을 실어 마음을 실어/꽃다운 인생살이 고개를 넘자”(이상 1절만 인용)였다. 그런데 그가 월북하는 바람에 금지곡이 되자 박남포(朴南浦)가 가사를 고쳤다.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봄에/새파란 젊은 꿈을 엮은 맹세야/세월은 흘러가고 청춘도 가고/한 많은 인생살이 꿈같이 갔네.”
박남포가 누군가. 가수로 작사가로 일세를 풍미한 반야월(半夜月·1917~2012)이다. 본명 박창오(朴昌吾). 1939년 가수로 데뷔할 때 진방남(秦芳男)이라고 하더니 추미림(秋美林), 남궁 려(南宮麗), 금동선(琴桐線), 허 구(許久), 고향초(高香草), 옥단춘(玉丹春), 백구몽(白鷗夢), 이렇게 많은 이명을 썼다. 반야월이라는 이름은 1942년에 처음 등장한다.
지는 꽃과 흐르는 물이라는 낙화유수는 가는 봄을 상징한다. 낙화와 유수를 남녀에 비유해 서로 그리워하는 애틋한 정을 뜻하는 말로 쓰기도 한다. 중국 당(唐)의 시인 고병(高騈)의 ‘방은자불우’(訪隱者不遇:은자를 찾았으나 못 만나다)에 나온다. “꽃잎 떨어져 물 위로 흐르니 천태산/술에 반쯤 취해 한가로이 읊으며 혼자서 왔네/서글프다 선옹은 어디로 가고/살구꽃 복사꽃 뜰 가득 피었구나”[落花流水認天台 半醉閑吟獨自來 惆仙翁何處去 滿庭紅杏碧桃開]
4월의 마지막 날, 물처럼 흘러가는 봄을 보며 낙화유수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