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올림픽의 평창 개최가 확정되고 온 나라가 환호할 때부터 필자는 평창올림픽에 대한 우려와 반대 의견을 계속해서 주장해왔다. 심지어 올림픽 개최의 역사가 평창에게는 영광이 아닌 걷잡을 수 없는 저주로 남을 수도 있다는 표현까지도 서슴없이 말하곤 하였는데, 강연이든 강의든 이와 같이 늘 주장하고 다녔기에 그 과정에서 욕도 많이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와 같은 우려가 정말 현실이 되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된다. 그리고 더 두려운 것은 그 문제의 중심에 돈의 논리와 함께 양극화로 치닫고 있는 집단 간의 대립이 있다는 것이다.
일본과의 분산 개최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정치적 쇼에 불과했다. 물론 이 쇼는 IOC가 기획하고 감독한 작품이었고, 우리 모두는 이 농간에 필요이상의 과민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쇼가 남겨놓은 불똥이 엉뚱하게 국내 분산개최론으로 튀며 문제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그 전까지는 분산개최에 대한 논의자체가 거의 전무한 상황이었는데, IOC발언과 인천의 실패가 맞물리면서 최근 찬반 주장이 팽팽히 대립 중이다.
솔직히 본인은 평창 단독개최와 분산개최 가운데 무엇이 과연 옳은 일인지 판단이 잘 서질 않는다. 분산개최를 시도한다면 분명 경제적으로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올림픽은 아시안게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경제적 수지 타산만으로 따질 수 없는 유무형의 유산이 반드시 존재한다. 물론 그 유산 안에는 성공적 경제 효과도 포함돼있겠고, 분산개최가 그에 대한 훌륭한 답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지금껏 올림픽과 월드컵은 물론, 전국의 수많은 지자체에서 열린 각종 국제대회에도 국민의 세금이 사용되어 왔는데, 비관적인 경제 전망과 인천의 반면교사를 이유로 유독 평창에만 엄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형평성의 논리에 어긋난다. 그럼 혹자는 뻔히 보이는 빚잔치를 하자는 말이냐라고 비판할 수 있겠다.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이 문제는 논리적으로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답답한 맘을 쉽게 이야기하자면 강원도도 좀 살아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메가이벤트의 가장 확실한 유형적 유산은 바로 사회간접자본의 확충이다. 개도국이나 후진국들이 메가이벤트 유치에 열을 올리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온 국토가 공사판이 될 정도로 개발이 되는 동안 강원도가 소외받아온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평창과 강원도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 말이 주는 무게감과 의미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본인이 우려하는 것은 매우 단순하다. 평창의 문제는 절대 돈의 논리로 풀어서는 안 된다는 것과 그 과정에서 집단 이기주의적 진영논리로 대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돈의 논리라면 애당초 올림픽 유치 자체가 넌센스이고 그동안 침묵하다가 지금에서야 돈의 논리를 주 이유로 분산개최를 주장하는 것은 시의 적절성과 설득력 모두 떨어진다. 또한 평창 단독 개최를 찬성 혹은 반대하는 집단들 모두에게 과연 강원도민을 위한, 강원도를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있을지도 의문이다. 즉, 강원도민의 마음으로 먼저 이 문제를 보는 것이 급선무가 아닐까싶다. 강원도민들에게 빚 때문에 고통 받을 것이라고 이야기해봤자, 어쩌면 외지인들은 모르면 가만히 있으라는 타박만 들을지도 모를 일이다. 올림픽은 국가적 행사인데 국가적 관점에서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비판집단이 전체 국가의 이익을 대변하는지도 미지수고 내 주머니를 지키기 위한 진영논리로 비쳐지기도 한다.
어찌됐건 빚도 자산인데 그동안 소외 받았던 강원도민들은 제대로 된 그들만의 자산을 갖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그게 빚이든, 남겨진 시설이든, 평창에 대한 자부심이든 말이다. 그럼 답은 강원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머리를 맞대고 혜안을 모으는 것부터다. 하지만 이를 거부하는 집단이 있다면, 그들은 왜 거부하고 있으며,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이익집단들이 있는지, 국민의 눈으로 감시해야 한다.
돈의 논리와 진영논리가 우려되는 분산개최만이 성공적개최의 전제조건일 수 없다. 올림픽 이후를 제대로 준비하는 것이 평창을 위해 보다 더 중요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비단 본인뿐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