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와 자산운용사에 리서치센터장 출신 최고경영자(CEO)의 전성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리더를 보면 회사의 방향을 알 수 있다고 했던가. 금융투자업계가 최근 업황 침체로 인한 롤러코스터에 버금가는 변화를 겪으면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전략형 CEO를 앞다퉈 내세우고 있다.
지난해 금융투자업계의 신임 CEO 인사의 트렌드는 리서치 헤드 출신이었다.
KDB대우증권은 작년 12월 홍성국 리서치센터장을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했다. 홍 사장은 대우증권 설립 이래 공채 및 리서치센터장 출신으로 CEO 자리에 오른 첫 사례가 됐다.
홍 사장은 1986년 대우증권에 입사, 지점과 법인영업 근무를 5년간 한 뒤 나머지 22년을 리서치센터에서 근무한 ‘리서치통’이다. 특히 지난 2000년 투자분석부장으로 재직할 당시 대우사태 이후 침체됐던 대우증권 리서치센터를 부활시킨 주인공으로 평가받는다.
작년 8월 IBK투자증권의 대표이사에 오른 신성호 대표 역시 리서치센터장 출신이다. 신 대표는 동부증권 리서치센터장, 우리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 등을 역임하며 리서치 분야에만 약 30년간 종사했다.
그는 대표에 취임한 이후 리서치 전문가답게 ‘공부하는 조직’ 문화를 강조했다. 대표 취임 이후 두 달여 동안은 직접 10회에 걸쳐 전 직원 대상으로 3시간씩 강의를 진행하고 ‘토요PB스쿨’을 개설해 매주 토요일 PB 대상으로 외부 강사를 초청해 강의를 진행하며 전문적인 조직 만들기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서명석 유안타증권 공동 대표는 업계 최초의 내부 리서치센터장 출신의 CEO다. 서 대표는 1986년 동양증권에 입사해 투자전략팀장과 리서치센터장, 경영기획부문장 등을 역임한 뒤 지난 2013년 CEO직을 맡게 됐다. 당시 리서치센터를 거쳐 외국계 증권사 사장이나 자산운용사 사장 등에 오른 경우는 있었지만, 내부 승진을 통해 CEO에 취임하는 사례는 없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서 대표는 리서치센터장 출신인 본인만의 장점을 바탕으로 지난해 동양증권을 유안타그룹으로 성공적으로 매각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리서치 전문가만의 분석력과 프레젠테이션 능력을 발휘해 유안타그룹에 동양증권이 매력적 매물이라는 의사를 잘 전달했다는 것이다.
장승철 하나대투증권 대표도 지난 2005년 현대증권 리서치센터장을 거친 인물이다. 장 대표는 1987년 지금의 투자분석팀 격인 조사부를 시작으로 1991년부터 지금까지 국제영업부, 홍콩현지법인장을 거쳐 국제영업본부장에 오른 뒤 리서치센터장으로 영전했다. 장 대표는 국제영업 분야의 풍부한 경험과 리서치 경험으로 투자의 내실을 다졌다는 평가다.
고원종 동부증권 대표와 토러스투자증권의 손복조 대표 역시 센터장 출신 CEO로 꼽힌다. 특히 고 대표는 과거 노무라증권 애널리스트 시절 ‘대우에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는 리포트를 통해 대우그룹의 몰락을 예견한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유명하다.
증권사뿐 아니라 자산운용사에도 리서치센터장 출신 CEO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한국투신운용은 작년 12월 조홍래 대표이사를 선임하고 리서치 강화에 나섰다. 조 대표는 지난 2005년 한국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으로 활동했다. 조 대표 취임 이후 한국투신운용은 최근 리서치부서에만 신입직원을 5명 배치하는 등 리서치 분야에 힘을 싣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서 최근 증권업 트렌드에 익숙하고 전략과 분석의 달인인 리서치센터장 출신의 CEO를 잇달아 선임하고 있는 것은 불황을 겪고 있는 증권업계가 생존을 위해 새판 짜기에 나섰다는 의미다.
과거 증권업계가 활황이던 시기에는 특유의 추진력을 가진 영업부서 출신 CEO들이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 시장 환경이 급변하면서 공격적인 영업 확대보다는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전략형 CEO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자본시장이 급변하면서 리서치센터장 출신 CEO들이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며 “변화가 큰 시기에 내부 사정에 정통하고 변화에 걸맞은 전략을 수립하는 데는 리서치 전문가가 적합하기 때문에 당분간 이 같은 추세는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