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전쟁의 전운이 신흥국까지 짙어지고 디플레이션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오는 17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4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지난 3일 전 거래일보다 0.050%포인트 내린 연 1.935%에 마감했다. 사상 최저치를 재차 경신한 것은 물론 현 기준금리 수준보다도 낮다. 같은날 국고채 5년물 금리도 연 2.005%로 0.050%포인트 하락했다. 10년물 금리는 0.034%포인트 떨어진 연 2.211%로 집계됐다.
이는 각국 중앙은행들이 자국의 통화가치 ‘끌어내리기’ 경쟁에 나섰기 때문이다. 유럽 중앙은행(ECB)이 지난달 시장 기대치를 뛰어넘는 1조1400억유로 규모의 양적완화 정책을 발표했고 이를 앞두고 스위스, 덴마크, 루마니아 등 비유로존 국가들도 잇따라 금리 인하를 결정했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환율전쟁이 신흥국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싱가폴, 뉴질랜드, 러시아 등 주요국의 통화완화가 잇따른 가운데 호주 중앙은행(RBA)도 지난 3일 기준금리 인하에 동참했다.
RBA는 그동안 자산버블 등을 이유로 금리인하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으나 국내외 환경변화로 연 2.5%였던 기준금리를 18개월 만에 0.25% 포인트 낮은 2.25%로 하향 조정했다. 특히 호주는 금리수준이나 경제 여건 등이 한국과 비슷해 금통위의 정책 판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터키 등 통화정책 추가 완화 가능성 제기 = 호주를 포함해 현재 주요 13개국이 통화완화를 단행한 가운데 터키 등 다른 신흥국들도 추가적으로 환율전쟁에 가세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안남기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터키는 지난달 20일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내린 연 7.75%로 결정했으나 경기둔화 지속, 정치권 압박 등으로 이르면 이번주 긴급회의를 열어 추가 인하에 나설 가능성도 있어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훈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대부분 국가들의 최근 통화완화 조치가 시장 예상보다는 전격적, 선제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은 긴박한 상황속에서 정책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며 “이제 주목되는 것은 지난해 11월에 이어 중국이 통화정책을 또 한차례 추가적으로 완화할지 여부다”라고 설명했다.
디플레이션 우려도 한국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국제유가를 포함한 원자재 가격 하락, 수요부진 등으로 저인플레이션 현상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1월 현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동기비 0.8%에 그쳤다. 게다가 담뱃값 2000원 인상 효과가 없었다면 0.22%라는 분석이다.
소비자물가는 3년 가까이 물가목표 범위를 크게 하회하고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13년 10월 0.9%를 기록한 것을 제외하고 2012년 11월부터 2014년 11월까지 1%대를 유지했고 그후 두달간은 0%대를 이어갔다.
◇디플레이션 우려에 금리인하 주장 잇따라 = LG경제연구원도 지난 3일 ‘글로벌 디플레이션 리스크 커지고 있다’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한국 역시 디플레이션 우려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아 보인다”고 진단했다. 이어 “국내 경제는 장기 성장세 하락과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저하 현상이 함께 나타나고 있어 통화정책의 효과가 예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며 “금리 인하 등 적극적인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앞서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지난해 11월 한국 경제가 1990년대 디플레에 빠지기 직전의 일본과 닮은꼴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하며 금리인하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해외 투자은행(IB)도 1월 말 기준 12곳 중 9곳이 한국이 올해 기준금리를 추가로 하향조정할 것으로 예상했다. HSBC, 모건스탠리, 도이치뱅크는 오는 2~3월, 노무라, JP모건, 골드만삭스, 소시에테제네랄는 4~6월에 금통위가 금리를 한차례 내릴 것으로 봤다. BNP파리바, 크레디트스위스는 상반기중 기준금리를 두차례 내릴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시티그룹, 바클레이즈캐피털, UBS는 올해 기준금리가 동결될 것으로 점쳤다.
마크 월튼 BNP파리바 이코노미스트는 이날 소비자물가 분석 보고서를 통해 “디스인플레이션은 한국은행 정책의 주요 테마가 될 것이며 부진한 내수시장과 글로벌 경제의 역풍을 반영해 3월 한차례, 2분기 중 한차례로 상반기 동안 총 두차례의 금리인하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내다봤다.
이런 가운데 한은은 지난 1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를 동결하며 현 2.0%인 기준금리가 경기 회복세를 지원하는 데에 충분하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또 최근에는 인플레이션보고서를 통해 “주요국의 디플레 사례를 통해 볼 때 예측 가능한 시계에서 우리나라에서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이후 한달간 대외환경이 크게 변하면서 오는 17일 어떤 결정을 내릴지 시장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