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그해 봄’.
아리송한 문구가 쓰인 문을 열고 들어선다.
낡은 이발용 의자와 연탄난로, 어릴 적 대중목욕탕에서 보았던 모양의 타일이 붙은 세면대, 배불뚝이 브라운관 TV,
고풍스러운 나무 소재의 등받이 소파, ‘쾌남~’을 외치던 광고의 화장품 회사의 로고가 새겨진 습도계….
머릿속 시간이 1990년대, 80년대, 70년대를 거쳐 하염없이 거꾸로 흘러간다.
이내 시선이 꽂힌 곳에는 1977년 재교부된 빛바랜 이용사 면허증과 허름한 약장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바리캉,
사인펜으로 직접 쓴 이용요금표가 자리하고 있다.
순간 2014년 겨울 문턱에서의 현실을 잊었다.
‘효자동 이발사’.
강원도 춘천시 효자동 662-19번지 성일이용원의 주인장 지면상(65)씨의 50년 이야기가 내려앉은 공간의 모습이다.
1964년 봄 이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이발소 견습생 생활을 시작했다.
이발료가 80원이던 시절 하루 일당 200원을 받으며 그렇게 시작한 일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당시 이발소는 보통 이발사 2~3명에 아가씨 면도사 3~4명을 직원으로 두고 있었다.
좋은 시절의 이야기다.
이제는 하루에 손님 10명을 받기도 힘들다.
영화 ‘효자동 이발사’에서는 대통령이 사는 동네의 이발사를 통해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이야기했다.
주인공이 운영하는 이발소의 간판이 ‘孝子리발관’에서 ‘효자이발관’로 바뀌는 동안 수많은 사건들은 역사를 만들어냈다.
춘천의 효자동 이발사의 공간도 마치 영화처럼 근대사를 오롯이 품고 있다.
20년 단골손님이 의자에 앉았다.
가위가 닿는 곳마다 백발이 떨어진다.
이발사의 날렵한 가위질이 펼쳐지는 손엔 연륜만큼 주름이 가득하다.
초겨울 냉기가 문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이용원 연탄난로 위 주전자 물이 끓는다.
아련한 추억들이 수증기를 타고 새록새록 피어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