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가 전국 사찰에 수백억 원의 퍼주기 예산을 반영한 것으로 확인됐다. “쪽지예산은 없다”며 민원성·선심성 예산배정을 극구 부인하던 여야의 ‘쪽지예산’ 실체가 다시 한 번 적나라하게 드러난 셈이다.
최근 감액 심사를 마친 예산소위는 문화체육관광부 세출 예산 가운데서만 무려 30여건 사업의 예산을 증액했다. 감액 심사는 주로 예산을 깎는 작업임에도, 여야는 이런 식으로 증액을 병행해왔다.
예결위 관계자는 “감액 심사 와중에 ‘내 지역구 예산 좀 반영해 달라’는 주변 의원들의 요구가 너무 많아 어쩔 수 없이 일부는 소화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특히 ‘예산소위 심사자료’에 따르면 여야는 총 2167억원 규모의 ‘관광자원 개발사업’ 예산 중 무려 269억원 가량을 각 사찰의 새 건물을 올리는 데 배정했다. 정부의 예산편성 당시에는 없던 사업들로, 의원들의 지역구 관리를 위한 전형적인 퍼주기 예산이다.
구체적으로 새누리당 이학재 의원은 서울 강남구 소재 봉은사의 전통문화체험관 건립에 100억원을, 김도읍·문대성·이채익 의원은 부산 범어사 선문화센터 조성사업에 필요한 예산 70억원을 각각 증액했다.
여야가 약속이라도 한 듯 사이좋게 증액 명단에 이름을 함께 올린 경우도 있었다.
전남 장성군의 백양사 주변 기반시설 조성예산 40억원 증액 명단에는 새누리당 홍문표 의원과 새정치연합 정호준·황주홍 의원이 이름을 같이 올렸다.
35억원을 증액한 충북 보은군의 법주사 문화교육관 건립예산 증액에는 새누리당 경대수·박덕흠·박성호 의원과 새정치연합 노영민·박완주 의원이 함께 했다.
예산소위는 이외에 전남 장흥군 보림사 선다체험관 신축에 20억원(새정치연합 황주홍 의원), 경북 영주시 부석사 관광지 조성지원에 3억원(새누리당 이현재 의원)을 각각 증액했다.
이렇게 예산소위를 거쳐 사찰에 퍼 준 돈은 여야 간 이견이 없는 만큼 실제 예산에 그대로 반영돼 국회를 통과될 공산이 크다. 예산조정은 예결위의 고유 권한으로, 견제할 기구도 없다.
전직 예결위원 출신인 새누리당의 한 중진 의원은 “예결위가 거의 전권을 갖고 예산을 다루는 만큼 왜곡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 동의한다”면서 “다만 지역구 정치인의 존재 이유 중 하나가 지역예산 배정이라는 점도 이해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