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제약사의 무분별한 국내 진입을 억제하기 위해 정부가 지난 2009년 도입한 ‘사용량 약가 연동제’ 정책이 오히려 ‘잘 나가는’ 국산 신약의 해외 수출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20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수백억원에 달하는 연구개발(R&D) 비용을 쏟아붓고 신약 개발에 성공했지만, 국내서 ‘잘 팔린다’는 이유로 약값을 제대로 받지 못해 수출 계약이 무산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사용량 약가 연동제’는 경쟁력 있는 제품이 많이 팔릴수록 가격이 깎이는 매우 불합리한 결과를 낳아 수출 가격 협상에서 불리해지기 때문이다.
보령제약이 지난 1998년 개발을 시작, 12년 동안 500억원을 투자해 개발한 고혈압치료제 ‘카나브(15호 신약)’가 대표적이다. 국산 신약 중 가장 성공적이라는 카나브는 지난 2011년 3월1일 발매 이후 비약적인 매출 신장을 보여왔다. 국내 매출의 경우 △2011년 100억원 △2012년 182억원 △2013년 218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올 3분기까지 2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이 같은 시장의 호응은 해외 수출과도 바로 이어졌다. 보령제약은 카나브 발매 이후 지금까지 멕시코와 중남미 13개국을 비롯, 브라질·러시아·중국 등 총 17개국과 라이선스 아웃(license-out)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 2012년과 2013년에는 100억원이 넘는 라이선스 피(license fee)를 받았고, 올해만 100억원이 넘는 라이선스 피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지난 9월말께 멕시코에서 카나브가 본격 처방되면서 라이선스 아웃 계약 체결 3년만에 판매 매출도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카나브는 올초 사용량 약가 연동제를 적용받으면서, 터키와의 수출 협상을 벌였으나 가격 이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수출 계약이 결렬됐다.
또다른 국산 신약인 일양약품의 위궤양 치료제 ‘놀텍’도 약가 연동제로 가격이 내려가 브라질·UAE·터키 등의 제약사와 수출 계약을 체결하면서 수출 가격 협상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보령제약 카나브는 발매 당시 책정된 가격도 경쟁약보다 낮아 협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었는데, 추가 약가 인하까지 겹치면서 난항을 겪게 됐다”며 “현재 시판을 위해 가격 협상을 진행 중인 국가들도 올초 인하된 약가를 기준으로 가격을 제시하고 있어 앞으로의 계약도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약가 연동제라는 정책을 5년전 도입할 당시에는 국내 상황에 적합했지만 이제 국산 신약의 수출을 막고 있어 정책의 유연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