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이 국내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지난 2012년 시작된 엔화 약세(엔저)에 이어 최근에는 원화 강세(환율 하락)까지 겹치면서 기업들은 수익성 악화에 직면했다. 원·달러 환율 하락은 세계 시장에서 우리나라 제품의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이는 결국 기업의 매출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달 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009.2원으로 마감하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인 2008년 7월 이후 6년만에 1010원 밑으로 떨어졌다.
문제는 앞으로도 원화 강세가 지속돼 원·달러 환율 세 자리수 시대가 열릴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산업계는 이미 손익분기 환율 1052.3원(전경련 기준)에 못미치는 원·달러 환율이 수개월간 지속된 탓에 수익성에 타격을 입었다.
특히 환율에 민감한 자동차, 조선, 전자통신 등 주요 수출 기업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업종별로 보면, 조선업의 손익분기 환율이 1125.0원으로 가장 높았고, 석유화학(1066.7원), 전자통신(1052.3원), 자동차·부품(1050.0원) 등이 환율의 영향을 많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업계는 환율 하락의 충격파가 이미 감지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는 현대·기아차의 향후 실적 전망에서 환율 하락의 파급력을 가장 중요한 변수로 꼽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 10원 하락 시 국내 자동차 산업의 매출액은 약 4200억원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조선업의 경우 환율 하락이 지금 당장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타격이 불가피하다. 현 수준의 환율로는 이미 수주한 제품의 수익성을 보장받을 수 없고, 조선업황 부진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환율 하락이 수익성 악화를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
전자통신업계는 대기업보다는 소재·부품을 생산하는 중소·중견기업의 타격이 예상되고 있다. 기술 격차가 크지 않은 소재·부품업체들은 가격경쟁력이 고객처 확보에 주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원재료를 수입하는 석유화학업계도 환율 하락에 표정이 어둡다. 환율 하락으로 원재료인 원유 수입 비용이 줄어드는 이점이 있지만, 동시에 수출 비중이 70% 이상으로 높은 탓에 영업 손실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환율 하락에 큰 영향을 받지 않거나, 오히려 이를 호재로 받아들이는 업계도 있다. 환율 하락으로 수입 원가가 내려갈 경우 음식료업 등 내수 기업과 항공, 에너지 공기업 중심의 유틸리티업계는 원가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또한, 외화부채 비중이 높은 항공·유틸리티업계는 환율 하락으로 채무 상환 부담도 한층 덜 수 있다.
이주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산업 전체로 보면 원·달러 환율이 10% 하락할 때 기업의 순이익률이 2~3%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며 “최근 원화 강세가 하반기 국내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