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내는 걸 어렵게 만들면 소비자는 도망갑니다. 한류를 타고 급증하는 해외 역직구 고객도 죄다 놓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에서 아마존과 같은 세계적 온라인 유통기업은 절대 탄생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온라인 결제 방식이 복잡하고 번거로운 공인인증서 중심으로 발전해 온 것에 대한 이민화 한국벤처협회장의 일갈이다.
전자상거래 시장의 승부처가 마케팅에서 결제 시스템으로 옮겨 가고 있다. 아무리 감성을 자극하는 마케팅과 대규모 할인 행사를 해도 결제가 복잡하면 구매를 포기하는 경우가 속속 발생하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사이버쇼핑 거래액은 38조4940억원으로 전년보다 13% 성장했다. 업계는 온라인 오픈마켓 성장은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전자결제 시장 역시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온라인 결제 시스템은 공인인증서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공인인증서는 온라인에서 결제자가 본인임을 증명하는 사이버 ‘인감도장’이다. 실제로 공인인증서 그 자체는 보안성이 매우 뛰어나 우리나라에서는 사실상 유일한 온라인 인증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사용법이 어렵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익스플로러 사용자의 경우, 최소 3단계 이상의 ‘액티브X’를 설치해야 하는 등 사용이 번거로워 온라인 유통시장의 성장을 가로막는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전자결제 시장의 빠른 성장과는 달리 시스템 진화가 답보상태에 머물자, 업체들은 자구책으로 ‘간편결제’ 서비스를 내놓기 시작했다. 간편결제는 결제정보를 미리 저장해 두면 다음 번에는 원클릭으로 결제할 수 있게 하는 서비스다. 효과는 엄청났다.
간편결제의 효과를 가장 톡톡히 본 업체는 11번가다. 11번가는 SK플래닛이 개발한 ‘페이핀’을 발빠르게 적용했다. 페이핀은 상품구매 결정과 함께 최종결제가 이뤄지는 과정을 통합비밀번호 입력 한 번만으로 끝낼 수 있게 했다. 이에 11번가는 후발 주자임에도 옥션, G마켓, 인터파크 등의 거래량을 빠르게 따라잡으며 국내 3위 오픈마켓으로 도약했다.
이 같은 편리함은 모바일 쇼퍼까지도 11번가로 끌어들이며 단숨에 모바일 판매량 1위로 올려놓았다. 화면 크기가 작고 키보드 사용이 어려운 모바일에서 간편결제의 강력한 힘이 더욱 빛을 발했던 것이다. SK플래닛에 따르면 페이핀 도입 이후 월평균 이용 고객이 4배 이상 늘었고, 평균 거래량은 2배 이상 증가했다.
11번가는 최근 실시간 계좌이체도 페이핀 시스템을 적용했다. 페이핀 비밀번호와 결제인증번호, 계좌 비밀번호만 입력하면 결제할 수 있다. 기존에 계좌번호, 주민등록번호, 보안카드번호를 입력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옥션과 G마켓도 뒤늦게나마 모바일 간편결제 시스템을 도입했다. 모바일 쇼핑 시 간편결제가 가능한 ‘스마일페이(SmilePay)’ 서비스를 시작했다. 스마일페이는 최초 결제 시 카드번호를 한 번만 입력하면 이후 휴대폰 인증만으로 신속하고 편리한 결제가 가능하다.
구매 때마다 하던 카드번호 입력이나 본인 인증을 휴대폰 인증으로 한 번에 결제할 수 있다. 보안과 광고를 위해 겹겹이 뜨는 팝업창도 없다. 카드정보 등이 최초 1회 결제 이후에는 결제 시마다 재전송되지 않아 해킹 위험도 더 낮췄다는 평가다. 30만원 이상 결제할 때엔 공인인증서가 필요하지만 관련 정보를 사전에 입력해 두면 비밀번호 입력만으로 간단히 결제가 이뤄진다.
이 외에도 다양한 간편결제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KT MOCCA(모카)의 ‘유비페이’는 6~10자리로 된 카드별 PIN 숫자를 넣으면 결제가 가능하다. 다만 계좌이체 시 공인인증서, 모카핀, 계좌 비밀번호 등을 입력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하나SK 스마트페이는 휴대폰 번호와 영문·숫자로 된 비밀번호만 넣으면 된다. 등록을 위해 2개의 앱을 별도로 설치해야 한다는 것은 단점으로 꼽힌다.
그러나 간편결제 서비스 역시 30만원 미만 결제에만 사용할 수 있고, 30만원이 넘으면 공인인증서를 사용해야 한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해외 업체는 일단 한 번만 결제 정보를 입력해 놓으면 아이디와 비밀번호만으로 금액과 상관없이 결제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30만원 이상 결제할 경우에도 공인인증서를 대체할 수 있는 인증수단을 사용할 수 있도록 빠른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