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골수도 운영 경험없는 대타 선장= 현재까지 드러난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이번 사고의 원인은 경력 6개월 항해사의 운항 미숙이 큰 원인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지목된다.
15일 오후 9시 승객 476명, 차량 180대, 화물 1157톤을 싣고 인천 여객터미널에서 출발한 세월호는 16일 오전 8시40분께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인 맹골수도(孟骨水道)를 지나고 있었다. 이 곳은 명량대첩지인 울돌목 다음으로 조류가 거센 곳이다. 해마다 3∼4건의 해상 사고가 발생하는 위험지역이다.
당시 배를 몰았던 승무원은 3등 항해사인 박모(25·여)씨였다. 그는 18일 검·경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부)의 조사에서 “최고속도 21노트(39km/h)에 가까운 19노트(35km/h)에서 방향을 바꿨다”고 진술했다.
박씨는 “그러자 조타장치가 휙 돌아가더니 배가 균형을 잃고 통제불능 상태에 빠졌다”고 말했다. 당시 시간은 16일 오전 8시49분이다.
선박운영 전문가들에 따르면 당시 세월호의 방향 전환시 속도는 차량으로 치면 100km/h에 해당된다. 고속으로 달리던 차가 급히 우회전한 것이다. 더욱이 박씨는 맹골수도의 운항 경험이 없었다.
◇초동대처 매뉴얼 무시돼= 문제는 그 이후부터다. 사고가 난 뒤 따라야 할 ‘운항관리규정’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세월호의 운항관리규정에는 선박이 사고가 나면 1등 항해사는 배의 우축, 2등 항해사는 배의 좌측을 맡아 탈출을 지휘해야 한다. 이외에 조타수와 기관사는 배 양쪽의 구명정을 투하해야 한다.
그러나 당시 세월호에는 1등 항해사가 없었다. 선장 이모(69)씨는 2등 항해사 면허를 보유했다. 2등 항해사가 배를 몬 것이 결격 사유는 아니지만 국내 최대급 규모의 여객선 운항에 1등 항해사가 없었다는 것은 논란이 될 소지가 크다.
특히 선장 이모씨, 3등 항해사 박모씨와 1등 기관수와 조타수는 모두 첫 번째로 배를 탈출했다. 이들 핵심 선원 6명은 16일 오전 9시50분께 승객 50여명과 함께 해경경비정에 첫 번째로 구조됐다. 더욱이 승무원들이 사고시 매뉴얼을 따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진도해상관제센터(VTS)의 “긴급 구조조치를 취하라”는 지시를 무시했다. 또 당시 세월호에는 구명정 40여개가 있었지만 이 중 2개만 펼쳐졌다. 이 역시 승무원들이 안전규정을 지키지 않은 것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청해진해운 안전교육도 없어= 세월호 승무원이 안전관리규정을 무시한 것은 이 선박의 선사 청해진해운이 안전교육을 실시하지 않았던 탓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청해진해운이 해경에 제출해 심사를 받은 세월호의 운항관리규정에 따르면, 청해진해운은 열흘마다 세월호에서 소화 훈련, 인명 구조, 퇴선(배를 버림), 방수와 같은 해상인명 안전훈련을 실시해야 한다. 또 3개월마다 비상조타훈련, 6개월마다 충돌·좌초·추진기관 고장·악천후 대비 등 선체 손상 대비훈련과 해상추락 훈련을 하겠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같은 훈련이 거의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청해진해운이 지난 18일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감사보고서를 보면 이 회사가 지난해 안전교육 등 ‘연수비’ 명목으로 지출한 금액은 54만1000원에 불과했다. 이를 1인당으로 따지면 4100원에 그친다. 청해진해운의 지난해 접대비는 6000만원으로 2012년보다 20%나 늘었다.
청해진해운은 적재 규정도 지키지 않았다. 세월호는 15일 인천항을 출발하며 해운조합에 승객 474명, 차량 150대, 화물 657톤을 실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사고 직후인 지난 16일 오후에는 승객 477명, 차량 180대, 화물 1157톤으로 말을 번복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정확치 않은 실정이다. 청해진해운은 세월호의 총 탑승 인원을 수 차례 번복해 실종자 가족에 혼선을 안겨줬다.
결국 이번 세월호 침몰은 배의 출항부터 운행, 이후 사고대처까지 총체적인 부실이란 지적은 피하기 어렵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