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지난 10년간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세계 무역구조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앞세운 미국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축으로 한 중국의 패권 타툼이 가열되는 등 세계무역 구도가 또다시 격류를 타고 있다. 이에 따라 G2인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 실리와 명분을 동시에 차지할 수 있는 21세기형‘신조선책략’을 서둘러 수립ㆍ가동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한·중FTA, 쟁점분야 팽팽한 신경전 = 중국은 지난해 우리의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4%에 달했다. 미국과 일본을 더한 것 보다 많다. 무역규모에서도 미국을 제치고 세계1위로 등극했다.
하지만 우리 기업은 실리를 크게 챙기지 못하는 양상이다. 우리 기업의 중국 수출 가운데 50% 정도가 현지에서 조립·가공하여 제3국에 수출하는 형태로 진행되고 내수시장에선 중간재는 토종기업, 고급 소비재가 현지 외자기업에 밀리고 있다.
하지만 10차까지 진행된 협상에선 쟁점분야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신경전이 전개되는 양상이다. 실제로 산업부는 지난달 한중 FTA 제10차 협상에서 9차 협상 때 교환한 시장개방안을 토대로 품목별 양허 협상을 진행했지만 큰 진전을 보지는 못했다. 우리 측은 중국이 석유화학·철강·기계 등 제조업 부문을 대거 '양허 제외'로 분류한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조기에 시장을 개방해 줄 것을 설득했다.
이에 대해 중국 측은 한국에 비해 산업경쟁력이 처지고 대한(對韓) 무역적자가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시장개방에 난색을 표했다. 반면에 중국은 한국이 농수산물 개방에 소극적으로 나오는 것을 못마땅해했다.
상품분야 외에 서비스·투자, 지적재산권, 경쟁, 경제협력 등에 대한 협상도 진행됐지만 이렇다 할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특히 농수산물과 제조업 등 양측의 민감사안에서 한중FTA의 쟁점이 본격 점화됐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한중 정상이 연내 타결을 언급했지만 상당한 진통이 예고되면서 이를 낙관하기 어렵게 됐다.
◇TPP, 미·일간 협의가 주효…국내 합의도 관건 = 다자간 FTA인 TPP는 현재 한·중 FTA와 함께 우리 통상정책의 큰 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TPP을 통해 세계 3위의 경제대국 일본마저 우리 경제영토로 편입한다면 사실상 전 세계와 자유롭게 교역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산업부의 통상당국을 주축으로 TPP의 거시경제효과 분석, 이해관계자 의견수렴절차 등을 거쳐 지난해 11월 말 TPP 관심표명을 발표했고 이후 TPP 참여국들과 예비 양자협의 개시했다.
이어 지난달까지 TPP 참여 12개국과의 1차 예비 양자협의를 마무리 지은 통상당국은 4월말까지 2차 예비 양자협의를 완료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국내에선 4월 중 TPP 참여시 산업별, 분야별 심층영향분석을 완료 후 협상동향과 예비 양자협의 결과를 종합 검토해 TPP 참여에 대한 최종 입장을 정립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TPP 참여 행보는 여전히 여러 문제가 산적해 있다. 우선 고노담화 수정논란 이후 정치적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일본과의 협의는 선결문제로 남아있다. TPP 참여국 중 1곳이라고 반대한다면 참여 자체가 무산되기 때문에 정황상 일본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TPP 참여를 빌미로 통상압력을 가속화하고 있는 미국의 전략도 풀어야할 숙제다. 한미간 통상정책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자동차, 농축산분야의 얼마를 양보해야할지가 관건이다. 또한 지난 2월 싱가폴 각료회의에서 TPP 참여국들의 협상이 실패로 돌아감에 따라 우리의 TPP참여 또한 장기화될 전망이다.
◇호주·캐나다 FTA 진전…국회 검증 '고비' = 최근 타결된 호주.캐나다와의 FTA 협상은 통상당국의 유의미한 성과로 기록된다. 수년간 표류하던 FTA 협상을 몇 달간 압축해 풀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TPP 참여를 앞두고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협상을 너무 앞당겼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또한 최근 타결된 캐나다와의 FTA의 경우 한ㆍ호주 FTA와 더불어 우리나라가 자동차 등 공산품 시장개방을 확보하고 쇠고기·돼지고기 등 축산물 시장을 내줬다는 측면에서 유사한 과정을 걷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향후 이에 대한 국회 비준 절차다.또한 양 협상의 타결로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축산업에 대한 정부의 실효성 있는 종합 대책도 넘어야할 고비로 지목된다.
이와함께 지난달 말 한·뉴질랜드 FTA 6차 협상이 큰 성과없이 마무리된 점도 고심거리다. TPP 협상 참여국 12개국 가운데 이미 양자 FTA가 체결된 7개국 외에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 영연방 3개국과의 FTA를 마무리 짓고 일본, 멕시코 2개국만 FTA 미체결국으로 남겨둔 채 협상에 본격 참여하겠다는 통상당국의 TPP'7+3+2' 전략은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기 때문이다.
◇향후 통상, 미·중 패권 속 연결전략이 과제 = 전문가들은 우리 통상정책은 경제대국 1·2위인 미국과 중국이 아·태지역에서의 경제패권을 놓고 서로 다투는 상황과 다자간 구도로 변모하는 FTA 환경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미국은 TPP 협상을 주도하며 중국 제외했고 중국도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활용해 자국 중심의 지역경제동맹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는 이같은 상황에서 작년 6월 통상전략을 'FTA 허브국가'에서 '린치핀'(linchpin, 핵심축)으로 수정한 '신통상로드맵'을 수립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TPP, RCEP, TTIP 등 대규모 다자간 FTA가 모두 2014∼2015년 협상 타결을 목표로 하고 있어 FTA 지형 변화를 면밀하게 관찰하고 적절한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