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이통업계에도 25~27일 3일간 긴박한 사건이 벌어졌다. 삼성전자와 SK텔레콤의 ‘복마전(伏魔殿)’이다. 드라마로 만든다면 ‘갤럭시S5의 국내 출시일을 놓고 전 세계 1위 스마트폰 제조사 삼성전자와 국내 1위 이통사 SK텔레콤이 벌이는 3일간의 치열한 두뇌 싸움’ 정도로 소개할 수 있겠다.
지난 25일 통신 업계발로 갤럭시S5가 27일 이통3사를 통해 출시된다는 기사가 쏟아지며 사건은 시작됐다. 명목상으로는 이통3사 동시 출시지만, 사실상 SK텔레콤을 통한 단독 출시였다. KT와 LG유플러스는 영업정지 기간이어서 파손·분실, 2년 이상 사용자의 기기변경 등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갤럭시S5를 판매할 수 없다. KT와 LG유플러스의 반발은 불 보듯 뻔한 일. 이날 오후부터 밤늦게까지 삼성전자와 이통사 간의 줄다리기는 시작됐다.
26일 오전 삼성전자 서초사옥 로비. 모여있던 기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갤럭시S5를 조기 출시하냐는 질문에 삼성의 스마트폰을 총괄하는 신종균 IM부문장(사장) 겸 삼성전자 대표가 단호하게 부정했기 때문이다. 신 사장은 이통사와 조기출시를 협의조차 하지 않았다고 했다.
27일 오전 7시. SK텔레콤은 ‘갤럭시S5 국내 최초 출시’라는 보도자료를 전격 배포한다. 아침 일찍 벌어진 기습 출시다. 삼성전자는 “유감스럽다”는 공식입장을 내놨다. 적잖은 이미지 타격을 받았다고 보고 불편한 기색도 감추지 못했다. 삼성전자는 갤럭시S5 글로벌 출시일을 4월 11일로 잡아놓았고 국내 출시도 이날 전후로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갤럭시S5의 광고도 내보내지 않은 상황에서 제품이 먼저 나왔다. 특히 국내에서 갤럭시S5 론칭 행사도 계획했지만, 이미 제품이 출시된 상황에서 행사를 열어도 모양새가 좋지 않게 돼 버렸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자국 내에서만 보름 먼저 제품을 출시했다는 비난을 면키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SK텔레콤 측은 “우리가 독단적으로 결정한 게 맞다”며 순순히 자백했지만, 삼성의 무너진 자존심과 신뢰는 당분간 회복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렇지만,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유감 표명 외에는 별 다른 방법이 없다. 이는 이통사와 제조사의 특수한 관계 때문이다. 갤럭시S5는 삼성전자에서 만들었지만, SK텔레콤으로 납품하는 순간 영업에 대한 권한은 이통사 몫이다. 글로벌 기업인 삼성전자도 이통업계 1위 업체인 SK텔레콤 앞에서는 ‘슈퍼 을(乙)’일 뿐이다.
하지만 이번 3일간의 사건은 ‘갑과 을’의 관계 이전에 ‘정부의 이통3사 영업정지’ 후폭풍으로 봐야한다.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가 보조금 대란을 일으킨 이통3사에 영업정지란 벌을 내렸지만, 오히려 주변만 죽어난다. 미래부의 제재를 받은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통 3사는 오히려 마케팅 비용 절감이란 긍적적 효과가 예상되는 반면, 스마트폰 제조사와 영세 판매점만 직격탄을 맞고 있다.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가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이번 사태도 SK텔레콤이 영업정지를 피해 갤럭시S5를 출시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갤럭시S5의 기습 출시로 인해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27일은 팬택의 주주총회가 있던 날이기도 했다. 워크아웃 개시 이후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들어선 이준우 팬택 대표는 “이통사 영업정지로 수요가 50% 가까이 급감하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팬택은 지난해 영업손실 2971억원을 기록하며 2년 연속 적자를 냈다. 하지만 뼈를 깎는 구조조정 노력과 지난해 말 출시한 ‘베가 시크릿 업’ 등이 제 역할을 하면서 1~2월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1분기 흑자전환이 예상됐으나, 이통사 영업정지라는 치명적인 변수가 생긴 것.
삼성전자와 팬택. 서로 상황은 다르지만 속으로 울고 있는 건 마찬가지다. 정부의 탁상공론이 만들어낸 피해자다. 영세 휴대폰 판매점들은 말할 것도 없다. 정부는 최근 적극적인 규제철페에 나서고 있다. 통신 시장도 자발으로 정화되도록 내버려 두는 게 정답이다. 외국 사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빈대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면 안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