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해 한국은행으로부터 빌린 급전이 90조원을 넘어서 사상최대 규모라는 지적이 나왔다. 정부는 여기에 더해 금융중개지원대출(옛 총액한도대출) 8조7000억원, 출연금 554억원 등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해 정부 및 정부정책사업에 100조원 육박하는 돈을 지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정의당 박원석 의원은 17일 한은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이 같이 집계됐다고 밝혔다.
박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가 한은으로부터 빌린 일시차입금은 90조 8172억원이었다. 일시차입금이란 정부의 세입과 세출 규모가 일시적으로 맞지 않을 때 한은으로부터 대출을 받는 것으로, 정부 입장에선 국회 승인 없이 손쉽게 자금조달할 수 있는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이다.
지난 2003년부터 2012년까지 10년간 정부가 한은으로부터 받은 일시차입 규모가 171조 804억원이었음을 감안하면, 지난 한 해 동안의 대출금은 앞서 10년 동안 받은 전체 대출 규모의 절반이 넘는 셈이다.
이는 지난해 1월 금융통화위원회의 의결사항과도 정면 배치된다. 금통위는 당시 정부에 대한 일시대출금 한도 및 조건을 의결하며 정부가 일시적인 부족자금을 한은 차입보다는 재정증권의 발행을 통해 조달하고, 기초적인 부족자금 조달수단으로 활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부대조건을 달았다.
금융중개지원대출은 지난해 총 한도 12조원 중 8조7000억원이 집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 발권력을 이용해 중소기업 등을 지원하는 사실상의 정책금융에다, 정부는 최근 10년 한도를 2조4000억원 늘려놓고도 이를 채우지도 못했다고 박 의원은 지적했다.
여기에 한은은 금융감독원에 경비 목적으로 100억원을 출연했다. 중앙은행이 감독기관에 출연하는 사례를 해외에선 찾아볼 수 없는데다 법률상 출연금을 분담토록 돼 있는 정부는 정작 출연금을 내지 않았다. 한은은 농어가목돈마련저축장려기금에도 454억원을 출연했지만, 이 기금은 지난해 기획재정부로부터 ‘조건부 존치’ 평가를 받았다.
박 의원은 “정부가 재정으로 충당해야 할 부분에 돌려막기 식으로 무분별하게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하고, 한은이 이를 용인하고 있다”며 “사실상 준 재정활동으로, 국가 재정의 투명성을 저해하고 한은의 통화신용정책 운용에도 부담을 줄 수밖에 없어 법령 혹은 규정 일체를 전면 정비해 최소한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