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금융회사들의 해외 진출을 독려했다. 세계 15위권 금융강국 진입에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금융 비전은 새로운 수익원을 찾는 금융회사들의 경영전략과 맞아떨어졌다. 최고경영자(CEO)들은 세계 방방곡곡을 누비며 사업 기회를 타진했다.
선진국은 물론 몽골, 카자흐스탄, 미얀마 등으로까지 발걸음을 옮겼다. 금융회사들의 빨라진 행보에 금융당국도 세일즈 금융외교를 펼치며 전방위적으로 지원했다.
이 같은 노력은 숫자로 확인된다. 금융중심지지원센터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1년차인 지난해 금융권 해외점포 개수는 381개로 집계됐다. 2012년 355개와 비교하면 1년 새 26개나 늘어난 것이다. 리먼브라더스 파산 이듬해인 2009년 322개부터 2010년 333개, 2011년 344개를 감안하면 눈에 띄는 성적이다. 펀드 수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자산운용사들의 해외점포도 10개나 늘어났고 은행(8개), 여전(4개), 보험(3개), 증권(1개) 등이 그 뒤를 이었다.
그러나 늘어난 양에 비해 질은 여전히 미미하다. 지난해 상반기 은행들의 해외점포 당기순이익은 2억8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4.5% 줄었다. 은행의 현지·국제화 수준을 나타내는 초국적화지수도 4.8%로 글로벌은행 수준(25∼75%)에 비해 크게 뒤처져 있다. 국제금리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이자이익이 줄어든 데다 글로벌 경기부진의 영향으로 충당금전입액과 영업점 운영경비가 늘었기 때문이다.
증권사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2013회계연도 상반기(4~9월) 삼성, KDB대우, 우리투자, 한국투자, 현대증권 등 5대 증권사의 20개 해외점포 가운데 10곳이 적자를 기록했다. 이에 증권사들은 수익성이 떨어지는 곳을 중심으로 해외점포를 정리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우리투자증권은 베이징에 설립했던 리서치센터를 폐쇄했고 현대, 미래에셋, KTB투자증권, 메리츠종금증권 등도 일부 해외법인 운영을 축소시키거나 중단했다.
이처럼 국내 금융사들이 해외에서 고전하고 있는 이유는 △해외 네트워크 미비 △현지 전문가 부재 △IB 경쟁력 부족 △낮은 브랜드 파워 탓이다.
한 해외 IB 관계자는 “해외로 진출한 한국 금융회사들은 현지 한국 기업만을 상대로 영업하고 있다”며 “글로벌 은행에 비해 규모가 작아 자금조달 경쟁력이 낮다”고 지적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성공적 해외진출을 위해서는 중장기 비전과 전략을 재구축해야 한다고 말한다. 박 대통령의 ‘세계 15위권 금융강국 진입’ 로드맵이 원점부터 다시 시작돼야 한다는 얘기다. 우리와 비슷하게 글로벌을 진행한 일본에서 팁(Tip)을 얻을 수 있다.
김동환 금융연구원 수석연구원은 “한국의 해외진출 수준은 일본의 1970년대 수준과 비슷하다”며 “글로벌 네트워크, 현지 기업들의 요구, 정보 수집, 자금 조달 능력 등 다방면에서 원점으로 돌아가 전략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