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통상임금을 둘러싼 노사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내놓은 지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실무보다 법리해석에 치중한 지침 탓에 산업계의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통상임금 협의를 위한 노사정위원회의 장기표류가 전망되면서 빈약한 지침 속 노사 갈등은 쉽게 진화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 '판결 각주'로 전락한 정부지침, 업계혼란 가중 = 23일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의 골자는 지난해 12월 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합판결에서 제시한 통상임금 판단기준인 정기성과 일률성, 고정성 요건 등을 풀어 놓은 것이 골자다.
지침에 따르면 소정근로의 대가는 근로자가 소정근로시간에 통상적으로 제공하기로 정한 근로에 관해 사용자와 근로자가 지급하기로 약정한 금품으로 본다고 명시했다. 이어 정기성은 정기상여금 등 1임금지급기(1개월)를 초과 지급해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기준을, 일률성은 ‘모든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것뿐만 아니라 ‘일정한 조건 또는 기준에 달한 모든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것도 포함된다고 해석했다. 또한 고정성은 특정시점 재직 근로자에게만 지급하는 경우 통상임금에서 제외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이밖에 지침에선 상여금과 제수당의 명칭보다는 지급조건과 운용실태 등 객관적인 성질을 기준으로 통상임금성을 판단한다고 명시했다. 또한 노사는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임금의 단순화와 직무성과 중심 개편을 권유하고 있다.
하지만 업계와 전문가들은 지침의 내용이 법리해석에만 치중해 실제 산업현장에서 적용하기에는 무리라는 반응이다. 당장 상반기 임·단협이 집중되는 상황에서 노사가 법리해석만을 들고 나온다면 양측의 입장차와 혼란만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통상임금의 구체적인 안이 노사정위원회를 거쳐 확정되야 하는 만큼 정부의 입장에선 세부적인 지침이 부담이였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만일 통상임금 협상 결과가 지침과 상반되고 또 이를 신뢰해 구체적인 협상을 맺은 노사가 있다면 그에 따른 행정적 책임은 정부의 몫으로 남기 때문이다.
◇'험난한'노사정위…임금체계 개편 장기표류 우려 = 통상임금에 대한 협상테이블은 여전히 난항이다. 통상임금 등 임금체계 개편을 협의할 노사정위 중 노조 측이 협상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22일 새로 선출된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은 "통상임금 등 많은 난제가 있는데 정부가 노총의 노사정위원회 내 역할을 보장하는 등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가 먼저 대화할 뜻은 없다"고 밝혔다. 노사정위에서 들러리 역할을 할 생각은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한국노총은 앞서 탈퇴한 민주노총 대신 노사정위의 노측을 대변해왔지만 최근 정부의 민주노총 사무실 압수수색을 이유로 탈퇴를 선언했다. 이에 따라 현재 통상임금의 세부안을 마련한 뒤 1월말 노사정위를 열어 개편방향을 결정하려던 정부의 방침은 무산된 상태다. 특히 한국노총의 신임 지도부가 "정부 사과 없이는 노사정위에 안들어간다"고 잘라 말해 산업계의 '통상임금 대란'은 장기간 지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