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트)을 철폐하고 흑인 최초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등 ‘남아공 민주화의 상징’인 넬슨 만델라가 5일(현지시간) 타계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향년 95세.
제이콥 주마 남아공 대통령은 이날 성명에서 “그가 평화 속에 잠들었다”며 “남아공은 위대한 아들을 잃었다”고 밝혔다.
만델라는 지난 6월 지병인 폐 감염증이 재발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오다 9월 퇴원한 뒤 요하네스버그 자택에서 의료진의 치료를 받아왔다.
만델라는 아프리카민족회의(ANC)를 이끌며 아파르트헤이트를 펼쳐온 남아공 정부에 저항해 27년간 수감생활을 했다.
만델라는 34세인 1952년 변호사 자격을 획득해 남아공 최초의 흑인 법률사무소를 설립했다. ANC의 중심인물로 아파르트헤이트 철폐운동을 이끌던 만델라는 지난 1964년 리보니아 재판에서 내란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긴 옥살이를 하면서 남아공 민주화의 상징으로 떠오른 만델라는 1990년 2월 ANC가 합법적인 조직으로 인정받은 후 석방됐다.
그는 지난 1993년 프레데리크 데 클레레크 전 남아공 대통령과 함께 아파르트헤이트 종식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1994년 남아공 최초의 민주적 선거를 통해 흑인 첫 대통령이 됐다.
만델라의 병세가 악화해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동안 남아공 국민이 그의 쾌유를 기원했다. 그는 정계를 떠난 지 10년이 넘었으나 여전히 남아공에서 성인(聖人)처럼 추앙을 받았다.
그가 인류에 남긴 가장 큰 유산은 백인의 잘못과 죄악을 용서하고 남아공을 ‘피의 역사’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한 화합의 리더십이라고 FT는 평가했다.
그는 대통령 취임 이후 ‘진실화해위원회’를 출범시켜 잘못을 고백한 백인을 사면하는 등의 노력을 펼쳐 남아공을 안정시켰다.
임기를 마친 1999년 타보 음베키에 정권을 물려줬다. 이는 아프리카 혁명지도자 대부분이 장기집권을 꾀한 것과 다른 행동이라고 FT는 설명했다.
퇴임 이후에도 부룬디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힘을 쏟고 자선 활동을 펼쳤다.
2004년 공식 은퇴한뒤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나 2010년 월드컵 폐막식에 참석해 세계적인 축구축제가 남아공에서 성공적으로 끝난 것을 축하했다.
한국과도 각별한 인연이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인 지난 1995년 7월 만델라를 국빈 자격으로 초청했다. 만델라가 집권 1년 만에 방한한 것은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일군 양국의 공통점에 그만큼 관심을 가졌다는 평가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도 지난 2001년 3월 만델라를 초청해 극진히 예우했다.‘아시아의 만델라’로 불리기도 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만델라 자서전인 ‘자유를 향한 머나먼 여정’을 번역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