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 공포가 바꾼 유통시장]“동해도 위험”… 먼 바다 수산물 식탁 점령

입력 2013-11-04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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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산 오징어·꽁치 판매량 급감… 매출 비중도 수입산에 역전 당해

#“요즘은 해산물 살 때 신선도보다 원산지를 먼저 보고 구매해요. 방사능 때문에 수산물을 먹기가 꺼림칙하지만 평생 안 먹을 수는 없으니 제일 안전하다 싶은 바다에서 잡힌 것을 사는 거죠.”

서울시 양천구 목동에 사는 A(28)씨는 해산물을 살 때 꼭 원산지 표기를 본다. 일본 방사능 유출 사고 이후로, 평소 해산물의 신선도만 확인하던 습관이 생선이 어디서 잡혔는지까지 확인하도록 바뀌었다. A씨는 일본산 수산물만 피하기에는 국내산도 찝찝한 기분이다. 인터넷에서 일본 방사능 물질이 한국 앞 바다까지 퍼진 지도를 본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산물을 안 먹을 수는 없는 노릇. A씨는 일본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잡힌, 또 가격까지 저렴한 해산물을 장바구니에 넣었다.

일본발 방사능 공포로 우리 밥상에는 더 이상 ‘신토불이(身土不二)’란 말이 통하지 않는 시대가 왔다. 일본과 지리적으로 근접한 우리나라의 수산물도 방사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지며 소비자들은 일본은 물론 국산 수산물까지 외면하고 있다. 이를 틈타 노르웨이, 뉴질랜드, 대만 등 수입산 수산물들이 ‘한국 밥상’을 점령하고 있다.

▲롯데마트 서울역점이 원양선사 직거래를 통해 유통비용을 줄여 시세 대비 최고 50%가량 저렴한 오징어, 꽁치, 갈치, 동태 등 원양산 수산물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수입산 수산물 판매 ‘껑충’=소비자들이 일본 근해에서 잡힌 수산물을 외면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나라 수산물 수입액은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수산물 수입액은 지속적으로 증가해 지난 2011년 30억 달러를 넘어섰다. 반면, 지난해의 경우 전체 수입액 규모가 소폭 감소했다. 그러나 이는 전체 수입물량 가운데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10% 수준에서 3.2%까지 떨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본을 제외한 다른 국가에서 수입하는 해산물은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한 마트의 수입 수산물은 미국·러시아·중국·베트남 등 4곳, 5개 품목에 그쳤지만, 최근 아르헨티나와 에콰도르 등 남미지역, 세네갈·모리타니 등 아프리카 지역이 추가되며 27개국, 40여 제품으로 폭을 넓혔다.

마트 판매량을 보면 수입산 수산물을 선택하는 소비자들의 경향이 뚜렷하다. 마트는 일본과 국내에서 멀리 떨어진 수입 수산물이 일본 근해에서 잡힌 수산물보다 안전할 것이라는 소비자의 심리를 정확히 짚고 판매 촉진 마케팅 등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수입산 수산물들의 가격은 대부분 저렴해 소비자들은 ‘도랑 치고 가재 잡고’ 식으로 수입산 수산물에 손을 내밀고 있다.

올해 3분기까지 롯데마트의 수입 수산물의 판매율을 분석하면 베트남·세네갈·인도에서 수입한 갈치의 판매는 882.3%나 증가했다. 특히 연어나 랍스터는 눈에 띄는 강세를 보였다. 노르웨이산 연어의 판매율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91.3% 늘었으며, 미국·캐나다에서 수입한 랍스터는 1906.4%의 매출 신장률을 기록했다.

반면 국산 수산물은 소비자들의 환영을 받지 못했다. 올해 3분기까지 국산 고등어와 삼치의 판매율은 각각 22.3%, 18.1% 역신장했다. 오징어 판매는 지난해보다 16.3% 떨어졌으며, 새우와 꽁치 판매도 39.6%, 27.1% 줄어들었다.

◇“가격까지 싸네”… 수입 수산물, 토종 매출 역전 현상 = 수입 수산물 판매 증대는 처음에는 방사능 공포가 견인했지만, 이제는 가격의 하락도 수입 수산물의 판매를 이끄는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수입 수산물이 국내산 수산물의 매출을 역전하는 이례적인 현상까지 발생했다.

이마트 수산 코너에서 수입산 매출 비중은 2008년 15%에서 지난해 말 51%까지 급격히 상승했다. 이중 새우·게 등 갑각류는 수입산이 전체 중 95%를 차지하는 등 이미 국내산 물품을 완전히 밀어냈다.

특히 갈치는 아프리카산의 추격이 무섭다. 아프리카 세네갈 갈치는 국내 갈치와 맛과 생김새가 비슷한 반면, 가격(롯데마트 기준)은 제주산 대비 20%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세네갈 갈치는 지난해 전체 갈치 매출에서 1% 미만의 비중을 차지했지만, 올 들어서 10%가량으로 올라섰다.

고등어의 경우 주요 수입국인 노르웨이산 고등어의 가격이 상승하자, 영국산 고등어가 틈새를 파고 들고 있다. 노르웨이산 고등어는 세계적으로 수산물 조업량이 감소하고, 수요는 늘면서 최근 3년동안 가격이 20%가량 상승했다. 이에 국내 유통업체 이마트는 최근 북극 빙하가 녹으면서 차가운 해류가 하강해 영국 셔틀랜드 지역에서도 고등어 조업이 가능해지자 영국산 고등어를 직소싱해 판매하는 방식을 택해 저렴한 고등어를 소비자들에게 판매하고 있다. 영국산 고등어는 지난달 국내산 자반고등어의 절반 수준, 노르웨이산보다 40% 저렴한 수준에서 판매됐다.

◇수입산의 빠른 대체… 어민과 수산업자들 ‘괴롭다’= 수입 수산물이 식탁을 점령하자 어민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울산 방어진수협에 따르면 위판장에서 하루 40여척의 국내 어선이 가자미·대구 등 16~25톤의 수산물을 경매하고 있지만 판매가 어렵거나 제값을 받기 힘든 것으로 알려졌다. 가자미 한 상자의 가격은 예년 11만원에서 최근 7만원대로 폭락했고, 대구 또한 7만원까지 올랐던 가격이 현재 2만~3만원대로 떨어졌다.

어민뿐만 아니라 수산업 종사자들도 악영향을 받고 있다. 성황을 이루던 횟집과 일식집이 전업하거나 폐업하는 곳이 속출하고 있다. 일본과 가장 근접한 강원도의 한 횟집은 20%가량 매출이 뚝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은 지난해보다 매출이 40% 이상 줄어 울상을 짓는 상인들로 가득하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 방사능의 여파로 수입 수산물이 강세를 보이며 어민들과 수산업자들의 고충이 심해지고 있다”며 “정부와 업계에서 이를 도울 수 있는 대책이 분명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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