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순 여배우’의 대명사 손예진(31)이 감성 스릴러로 돌아왔다. 손예진은 24일 개봉하는 영화 ‘공범’(감독 국동석, 제작 선샤인필름, 배급 CJ엔터테인먼트)에서 아빠 순만(김갑수)을 사랑하지만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의심하며 혼란과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지는 딸 다은 역을 맡았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손예진은 ‘공범’을 떠올리며 “지금까지 출연한 작품 중 감정소모가 가장 많았던 작품”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그도 그럴 듯이 ‘공범’은 손예진, 김갑수 두 배우의 감정만으로 95분의 상영시간을 꽉 채운다.
“다은이가 결정적 단서를 잡은 후 ‘아빠 맞지?’라고 분노하면서 토해내는 장면이 있어요. 그 장면을 찍을 때 손발이 쩌릿쩌릿하고 멍한 느낌이 들 정도 온 몸에 힘이 빠졌어요. 감정신이기 때문에 연극처럼 한 번에 갔어요. 정말 지치고 힘들었어요.”
‘공범’은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가족 아빠를 유괴살인사건 범인으로 의심하는 딸의 절망적인 심정을 토대로 반전을 거듭하는 소름끼치는 스릴러를 선사한다. 다은이 우연히 듣게 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라는 범인의 목소리는 평소 아빠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었다.
“시나리오의 역발상이 흥미로웠어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빠가 범인이라면... 누구도 상상하지 않았지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범죄, 그 주인공이 나라고 생각하니 정말 무섭더라고요. 시나리오에 적혀 있는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의심’이란 문구가 저에게 강하게 다가왔어요. 극중 인물의 표정, 감정을 관객이 따라가는 것이 매력이죠. 그 긴장감이 잘 표현됐어야 하는데...”
손예진은 이번 영화를 통해 감정을 극한까지 가져갔다. 메이킹필름 속 그녀의 표정에서 볼 수 있듯이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배역에 몰입하니 고통스러웠고, 감정이 더 깊게 들어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밥도 못 먹고 식음을 전폐했었죠. (촬영할 때는) 매사에 의욕이 없고, 부정적이 되더라고요. 내가 사랑하는 아빠라고 생각하니 이성적이 될 수 없었어요. ‘백야행’이란 미스터리 멜로도 해봤지만 가장 솔직한 감정이 많이 나왔어요. 익숙하지 않은 표정도 많이 보였어요.”
손예진의 감정이 극대화될수록 상대역 김갑수와 호흡이 중요했다. 두 사람은 ‘연애시대’ 이후 7년 만에 다시 만났다.
“7년 만에 다시 만나 인간적으로 더 친해지고 싶었는데 배역상 살갑게 대하는 부분이 초반에 잠깐 있고 없어서 아쉬웠어요. 김갑수 선배가 워낙 젊게 살고, 생각이 열려있는 분이기 때문에 평소 유쾌하고 편하게 해주셨어요.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몰입해서 감정을 잡았어요.”
2000년 ‘비밀’로 영화계에 데뷔한 손예진의 필모그래피는 다양하다. ‘연애소설’, ‘클래식’,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작업의 정석’, ‘외출’, ‘무방비 도시’, ‘오싹한 연애’, ‘타워’ 등 손예진의 극중 배역은 정형화된 틀 없이 손예진의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주고 있다. 드라마 ‘상어’ 종영 직후 영화 ‘해적’의 촬영에 여념이 없는 손예진에게는 그 흔한 공백기도 사치다.
“작품을 선택할 때 ‘필(feel)’을 중요시해요(웃음). 손이 가는 작품이 있더라고요. ‘타워’는 볼거리가 많은 블록버스터인 반면 ‘공범’은 감정을 보여줄 수 있는 영화잖아요. 그래서 더 관심이 갔어요. 지금 촬영 중인 ‘해적’에서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겠죠.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재밌어요. 그런 면에서 전 운이 좋은 배우에요. 쉬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만 작품에 대한 열정이 더 앞서가요. ‘남는 건 작품뿐’이란 말도 있잖아요”
꾸준히 연기변신을 꾀하고 있는 손예진에게도 조심스러운 것은 있다. 바로 ‘노출’이다. 노출연기는 손예진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배역을 고민할 때 노출은 또 다른 부분이에요. 전 노출을 제외하고는 열려 있어요. 물론 노출연기는 멋있지만 제가 막상 한다고 생각하면 고민이 될 수밖에 없어요. 여배우에게 노출은 특히 어렵죠.”
손예진의 나이는 올해로 만 31살이다. 여배우로 쉼 없이 달려온 그녀도 가정이란 삶의 안식처에 대한 소망은 있다. 손예진은 결혼 계획을 묻는 질문에 “늦게 가고 싶지는 않아요”라고 쑥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주위 친구들이 다 시집을 갔어요. 저희 언니도 28살에 결혼했어요. 조카들을 보면 빨리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34살 전에는 하고 싶어요. 늦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 요즘에는 ‘내가 결혼을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도 자주 들어요. 웨딩드레스는 젊을 때 입어야 예쁘다고 하잖아요? 결혼은 저에게 또 다른 모험이에요.”
손예진은 그 어떤 배우보다 대중에게 친숙하지만 그녀의 필모그래피가 말해주듯 다음을 예측할 수 없다. ‘타워’의 여운이 아직 남아있는 이 때 손예진은 감성 스릴러 ‘공범’의 준비를 마치고 새 영화 ‘해적’ 촬영에 여념이 없다. 매번 새로운 연기변신과 도전으로 다가가는 손예진의 모습은 진짜 신비주의가 무엇인지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