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 공개 채용 시즌이 돌아오면 수험생들만 바쁜 게 아니다. 대기업 채용 담당자들도 눈코 뜰 새 없다. 여러 곳의 고사장을 빌려야 하고, 필기시험 문제 출제와 수송도 마치 ‘007 작전’을 방불케 한다. 그러나 매년 늘어가는 지원자로 인해 기업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특히 대기업 입사시험에 구직자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사회적인 폐해도 크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기업의 고민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매년 늘어가는 지원자… 기업 부담 만만치 않아 = 5500명을 뽑는 삼성의 올해 하반기 신입사원 공채에 역대 최다인 10만명 이상이 몰렸다. 이인용 삼성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장(사장)은 지난 2일 “상반기 8만여명을 포함하면 올해 전체 지원자가 18만명이 넘는다”며 “여기에 인턴까지 포함하면 20만명이 넘고 매년 큰 폭으로 지원자가 증가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LG 계열사 신입사원 공채에도 역대 가장 많은 지원자가 몰렸다. 지난달 25일 하반기 대졸 공채 원서 접수를 마감한 LG전자에는 3만명 이상이 지원했다. 1000명 모집에 2만명가량이 원서를 낸 작년 하반기보다 1만명이나 늘었다. LG디스플레이도 지난해보다 7000명 늘어난 1만4000명이 하반기 신입사원 공채에 지원했다. LG유플러스도 하반기 신입 공채를 마감한 결과 1만8000여명이 지원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따른 기업들의 부담도 늘어나고 있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몇 해 전 매출액 1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신입사원 채용비용’을 조사한 결과, 30개 응답 기업은 1인당 채용에 평균 116만원의 비용을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입사원 100명을 뽑는다면 순수 비용으로만 1억원 이상이 투입되는 셈이다.
비용이 가장 많이 드는 부분은 ‘면접전형’이다. 감독비, 장소 임대료, 면접비(교통비) 등이 모두 포함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지원자가 더 몰리기 때문에 채용비용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공개채용 개선 나선 삼성 = 매년 지원자가 늘면서 사회적 부작용이 나타나자 재계 1위 삼성은 대졸 신입사원 채용방식을 개선하는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이인용 사장은 “채용 방식에 변화가 필요한 것이 아닌지 고민하고 있다”며 “여러 가지 방안을 놓고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SSAT 위주의 기존 채용 방식에 변화를 주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1995년 SSAT를 처음 도입한 삼성은 신입사원 공채에서 서류전형 없이 일정 자격만 갖추면 모든 지원자에게 SSAT 응시 자격을 주고 있다. 하지만 SSAT 응시자가 크게 늘면서 여러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먼저 고사장 확보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 학교에서 500명 정도가 SSAT 시험을 치른다고 가정할 경우 10만명을 소화하려면 200곳의 고사장을 마련해야 한다. 고사장 관리와 SSAT 시험지 인쇄, 배송에만 수십억원가량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장은 “개인적 비용과 사회적 비용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며 “여러 가지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의 이러한 채용 제도 변화는 재계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2000년대 초까지 전공과 상식, 영어 등으로 필기시험을 치렀던 주요기업은 최근 자체적인 인적성검사를 필기시험으로 대체하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자체 인적성 검사인 HKAT를 운영하고 있다. LG그룹은 ‘LG 웨이 핏 테스트’를, 두산은 ‘두산종합적성검사(DCAT)’를 운영 중이다..
현대기아차 인사 관계자는 “당장에 자체적인 업무능력검사를 바꾸거나 제도 변화를 추진할 계획은 없다”면서도 “(삼성을 포함한) 다른 기업의 공채 방식을 참고해 우리에게 맞는지 검토한 후 도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채용 전형의 변화가 채용 문화를 바꾼다 = 기업들의 채용 방식이 다양화되면서 천편일률적이었던 면접 장소심사 방안 등의 채용 문화도 다채롭게 변하고 있다. 기업들이 열정과 도전정신으로 똘똘 뭉친 인재를 선호하면서 채용 장소는 회사가 아닌 ‘밖’에서 진행되고, 스펙으로 가득 차 있던 이력서가 사라지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올해 채용에서 이른바 ‘길거리 캐스팅’을 도입했다. ‘더 에이치(The H)’라는 이름의 채용 방식은 인사 담당자가 대학 등을 찾아 올바른 인성을 갖춘 인재를 직접 발굴한다. 이렇게 발탁된 인재들은 약 4개월간의 인성평가 프로그램을 거친 후 입사할 수 있다.
SK그룹 또한 바이킹 챌린지 프로그램을 시행, 스펙이 아닌 끼와 열정, 능력 중심의 열린채용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바이킹 챌린지는 기존의 채용 방식과는 다르게 지원자들의 학력은 물론 전공, 외국어 점수 등 스펙과 관련된 모든 사항이 고려 대상에서 제외된다. 지원자들은 오디션을 통해 자신의 강점을 피력하고, 별도의 합숙을 통한 미션 수행 능력을 평가받은 후, 최종 합격 여부를 통보받는다.
재계 관계자는 “다양한 입사전형이 생기면서 채용 방식도 변하고 있고, 이러한 변화가 채용 장소와 문화 등을 바꾸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