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드라이버가 많았는데 이는 골동품 가치가 있는 골프채 수집에 남다른 취미가 있기도 했지만 주위에서 잘 맞고 멀리 나간다며 신제품 드라이버를 자주 선물했기 때문이었다.
새 드라이버를 들고 온 사람마다 “이 채는 지금보다 10야드 더 나가는 신병기입니다”라는 말을 빠뜨리지 않았는데 나중에 이 회장은 “내가 30년도 넘게 골프를 쳤는데, 그 신병기들의 효과가 사실이라면 난 벌써 파4홀 정도는 거뜬히 원온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새 드라이버가 나올 때마다 10야드씩 더 나간다고 했으니까. 다 소용 없는 얘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일화는 아무리 골프장비가 좋아지더라도 비거리를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으며 볼을 멀리 정확하게 날리기 위한 좋은 스윙을 연마하지 않은 채 골프채로 이를 대신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임을 일깨워준다.
그럼에도 ‘멀리, 그리고 정확하게(Far & Sure)’에 대한 골퍼들의 열망이 스윙의 개발과 함께 골프장비의 발전을 촉발했다.
특히 장비의 발전은 눈부셨다. 이병철 회장의 “다 쓸 데 없는 얘기야”라는 명언을 무색케 할 정도가 되었다. 골프장비 개발에 첨단소재와 첨단과학이 접목되면서 비거리 증대와 정확도 개선에 괄목할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미국 PGA대회를 치르는 골프장들이 최근 너무 좋은 스코어가 나오자 난이도를 높이기 위해 코스를 뜯어 고치는 등의 법석을 떠는 것도 골프장비의 개선 때문이다.
스윙 로봇을 응용한 획기적인 골프장비의 발달은 다분히 아날로그적 스포츠인 골프를 디지털 스포츠로 변화시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 유행하는 스크린골프는 대표적인 디지털 스포츠다. 아마도 골프만큼 아날로그적인 요소와 디지털적인 요소가 혼합된 스포츠도 찾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첨단소재와 첨단과학이 골프에 응용되어 골프의 디지털화가 가속화하더라도 골프 장비를 다루는 사람을 디지털화할 수는 없다. 아무리 멀리 날아가는 볼, 쉽게 칠 수 있는 골프채가 나오더라도 필드에서 스윙을 기계가 대신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스윙의 주체가 사이보그가 아닌 사람인 이상 디지털적인 스윙동작은 불가능하다.
골프에서 아날로그적인 요소의 제거가 불가능하다면 디지털적인 요소와 아날로그적인 요소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디지로그적 사고와 훈련이 불가피하다.
첨단소재와 첨단과학으로 만들어진 골프장비도 잘 단련된 육체와 좋은 훈련으로 다듬어진 스윙, 그리고 골프 장비를 신체의 일부로 받아들여 일체화하려는 마음가짐과 노력이 뒤따를 때에 비로소 뛰어난 장비도 제 기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완전한 디지털화가 불가능하다는 점, 이것이 바로 골프가 불가사의한 스포츠라는 것을 말해주는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