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새로운 정부가 실수를 거듭하고 있고, 국민들도 답답해 하고 있다. 체면만 차리고 있을 때는 아닌 것 같다. 같이 반성하고 같이 배우자는 뜻에서 쓴다.
문제의 비화는 김태호 전 경남지사가 총리 후보에서 낙마한 후 김황식 감사원장이 새 후보로 지명되던 과정, 그리고 이로 인해 공석이 된 감사원장 자리에 정동기 전 민정수석이 지명되었다 사퇴하는 과정의 이야기이다. 당시 수석이나 주요 비서관 등의 진술을 정리하고 있다. 다소 놀라운 부분도 있고, 일그러진 자화상을 보는 것 같이 가슴이 아픈 부분도 있다.
먼저, 대통령에 대한 호칭이 놀랍다. 대통령에게 김태호 총리 후보를 포기하라 건의하는 정진석 정무수석의 말이다. “더 밀어붙이면 각하만 다칩니다.” 각하!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다. 참여정부의 경우 청와대 안의 그 누구도 대통령을 ‘각하’로 부르지 않았다. ‘대통령님’이었다. 그러나 이 비화를 보면 MB정부 때는 그러지 않았던 모양이다. 대통령을 ‘각하’로 부르기도 했고, 대통령 역시 이를 수용했던 것 같다.
호칭이 뭐 그리 중요하냐? 또 ‘각하’라는 말이 대수냐? 외국 가면 장관이나 대사도 모두 그렇게(your excellency) 부르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각하’라는 호칭은 바로 신분적 차이나 권위적 위계로 연결된다. 그렇게 불리는 대통령도, 그런 대통령을 모시는 사람들도 스스로 특별한 사람이라 생각할 수 있다. 대통령만을 ‘각하’라 부르고 그런 존재를 모시면서 호가호위했던 문화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자연히 여러 가지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 일테면 대통령과 그 주변이 권위적이 되면서 소통이 잘 안 될 수 있다. 또 그로 인해 대통령에게 정보가 정확히 전달되지 않거나, 대통령의 말이 과대 해석되는 ‘정보왜곡’ 현상이 심화될 수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 주변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고질들이다. ‘각하’라는 호칭이 이를 악화시킬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래서 그런지 비화에 나타난 대통령이나 청와대 참모들의 언행은 과히 무협지 수준이다. 여당마저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내놓자 정무수석이 여당의 원희룡 사무총장에게 전화를 한다. 그리고 하는 말. “당신 정치를 어디서 이 따위로 배웠어!” 또 대통령은 여당 지도부를 부른 후 안상수 당 대표에게 ‘싸늘한’ 눈빛으로 한마디 한다. “많이 컸네.” 그리고 이 한마디에 쪼그라든 안상수 대표는 대통령이 따라준 막걸리 잔을 입에 대지도 못한다.
개인적 관계들이 어떠한지는 알 바 없다. 어찌되었건 이들의 관계는 청와대와 여당 간의 공식적인 관계이다. “많이 컸네”라고 한 방 날리는 대통령은 뭐고, 그 한 방에 정신을 잃어버리는 여당 대표는 또 뭔가? 보다 대등한 관계에서 논리적인 대화를 한다고 해서 더 잘 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뭔가 역사가 뒤로 간 것 같아 씁쓸하다.
끝으로, 인사에 관한 부분이다. 비화는 김황식 총리의 경우 정책 역량이나 국정수행 능력은 크게 고려하지 않은 채 지명했다고 전한다. 호남 출신에 청문회 통과 가능성이 높다는 비서관 한 명의 진언이 주효했다는 것이다. 우연히 건졌는데, 막상 건지고 보니 괜찮은 ‘대어’라 좋았다고도 했다.
한마디로 무례하다. 총리 인사를 그렇게 하다니. 당사자에게는 물론, 국민에게도 무례한 일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화상의 한 조각을 보는 것 같아 가슴 아프다.
출신 지역이나 성별 등 국정수행 역량과 관계없는 요소들을 앞세운 예가 어디 MB 정부뿐이었겠나? 또 대통령의 생각 없는 말 한마디, 국정과 정책이 뭔지도 모르는 측근들의 어이없는 생각들이 인사를 움직인 예 또한 없었겠는가? 지금의 인사 난맥도 이러한 잘못된 관행이 좀 더 깊이 진행된 결과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