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창의력이 있어도 선뜻 사업을 벌이기가 어렵다. 창업을 준비하는 많은 사람이 꿈을 접고 너도나도 프랜차이즈 사업에만 뛰어들고 있다. 이럴 때 누군가가 옆에서 든든히 응원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점에서 대표적인 금융기관인 은행의 역할이 중요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은행이 믿음을 잃어가고 있다. 사람들은 종종 은행을 '맑은 날 우산을 빌려줬다가 비 올 때 뺏어가는 곳'이라고까지 하소연한다. 중소기업이 제일 무서워하는 곳이 은행이라는 웃지 못할 소리도 있다. 이런 이미지가 당분간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상황이 이처럼 악화된 것은 그간 은행의 행보 때문이다. 바로 쉬운 길을 가려는 영업 행태다.
우선 '전당포 영업'이라고까지 얘기되는 담보 위주의 대출 관행이다.
기업이 대출을 신청할 때 은행은 꽤 두꺼운 분량의 사업보고서를 요구한다. 사업성 평가를 통해 대출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기업이 대출을 받기 위해 갖춰야 할 것은 결국 부동산 등의 담보자산이다. 심지어 같은 담보지만 대기업보다 이자를 2배 가까이 내야 하는 중소기업은 마냥 서럽기만 하다.
이는 은행권의 보신주의와도 관계가 있다. 은행 여신담당자의 말을 빌리자면 이름 없는 중소기업은 사업성 평가도 어려울뿐더러 대출에 부실이 생기면 징계를 받는다고 한다. 실무자가 직접 책임을 지다 보니 애초부터 심사는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은행은 다른 방법으로 쉽게 돈을 벌기도 한다.
‘ATM(현금자동입출금기) 장사’라고도 하는, 민간을 대상으로 한 수수료 수익이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은행은 수수료 이익으로만 한해 수조 원을 거둬들인다. 앉아서 편하게 돈을 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수많은 창업자와 기업이 돈줄이 막혀 아우성인데, 은행은 좀처럼 변하지 않고 있다.
자본시장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좋은 기업과 산업에 한정된 자원을 배분해 상생하는 것이다. 우리 경제 곳곳에 자본이라는 피가 흐르는 모세혈관이 얽혀있다. 이 피가 혈관 구석구석까지 잘 돌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은행이 맡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혈관에 작은 상처가 나더라도 피가 돌면 곧 아물기 마련이다. 작은 생채기에 도는 피를 막아서는 안 된다.
애플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워낸 스티브 잡스도 처음에는 자금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가 가진 것은 허름한 차고와 개발 중인 컴퓨터뿐이었다. 투자자가 없던 그에게 손을 내민 사람은 마이크 마큘라라는 자산가였다. 스티브 잡스의 능력과 가능성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만약 스티브 잡스가 우리나라에서 사업을 시작했다면 어땠을까?
자본시장의 기저에는 사람이 있다. 사람이 모여 기업을 만들고, 기업이 모여 산업을 이끈다. 은행은 응원해야 할 선수를 발 벗고 찾아 나서야 한다.
최근 금융감독원 조사에 따르면 올해 은행들이 중소기업에 공급할 자금규모는 30조8000억원이라고 한다. 지난해보다 4.8% 늘어난 어마어마한 액수다. 이제 우리의 은행들이 든든한 금융기관으로서 모험심과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경영자, 경쟁력을 갖춘 혁신기업을 찾아 희망을 심어주는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