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차기 정부에서 재정 건전성 유지와 저탄소 녹색성장 경제정책은 이어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또 최근 경제 뇌관으로 꼽히는 가계부채 문제는 일관성 있게 연착륙 국면을 보이고 있어 뇌관이나 시한폭탄이라는 시각은 현재로서는 과장된 분석이라는 견해를 나타냈다.
박 장관은 지난 4일 서울 중구 명동 은행연합회관에서 이투데이와 차기 정부에 대한 경제부처 장관 제언 인터뷰를 갖고 거시경제운영 방향과 경제현안, 그동안의 소회 등을 밝혔다. 박 장관은 명함을 건네며 “유통기한이 다 된 50일짜리 명함”이라는 농담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박 장관은 임기 중 애착이 가는 일과 차기 정부에 바라는 일 모두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재정 건전성과 관련해“외화내빈(外華內貧)보다는 외빈내화(外貧內華)가 낫다”며 “외형도 중요하지만 체질을 튼튼하게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소신을 나타냈다.
박 장관은 이어 “에너지 자원 빈국인데 에너지 소비는 과도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며 ‘저탄소 녹색성장 기조’가 다음 정부에서도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현재의 국내 경제상황에 대해서는 비교적 낙관적으로 해석했다.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것과 관련해서는 “지난해보다 성장률은 나아지고 성장률 내용도 개선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서도 “일관되게 연착륙하는 국면으로 가고 있다”며 “뇌관이다, 시한폭탄이다 하는 것은 과장된 분석”이라고 말했다.
퇴임을 약 50일 앞둔 시점에서 박 장관은 임기 중 가장 아쉬운 부분으로 ‘서비스산업 생산성을 높이지 못한 점’과 ‘민영화 논란으로 공기업 지분 매각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점’ 두 가지를 들었다. 최근 환율 하락에 대한 대응책에 대해서는 “직접 언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다만 시장수급과 펀더멘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맞다”고 즉답을 피했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이것 만큼은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정책이 있다면?
“무엇보다도 경제 전체 건전성이 중요하다. 성장기에 있는 신흥경제권이나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둔 나라는 외형이 커지면서 내적으로 문제가 계속 생길 수 있다. 덩치가 커질 때 그에 맞춰 내적인 시스템도 바뀌어야 하는데 그때 괴리가 생기면 나중에 곪아서 문제가 터지는 그런 상황이 될 수 있다. 외형도 중요하지만 체질을 튼튼하게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재정 건전성을 계속 유지했으면 좋겠고, 시스템 리스크에 노출이 되지 않도록 대외적 건전성도 계속 보강해 국가신용등급 상승 모멘텀을 이어가야 한다.
두 번째로 녹색성장 기조가 지속됐으면 한다. 본원적으로 우리나라가 에너지 자원 빈국인데 에너지 소비는 과도한 아이러니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 몇년 새 유가가 계속 올라 어려움을 겪었듯이 앞으로도 그런 국면은 쉽게 해소될 것 같지 않다. 이런 국면을 타개하지 않으면 상당한 애로를 겪을 수 있다. 탄소에너지 대신 신재생에너지 위주로 에너지 정책을 전환하고 기업은 물론 일반 국민들도 노력을 강화해서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같은 노력은 하루 아침에 되지는 않겠지만, 10년이나 20년의 장기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임기 내 추진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 정책은?
“우선 서비스산업 쪽에서 여전히 생산성이 낮고 규제가 많다. 규제라는 것이 국제 기준으로 볼 때 지나치다거나, 이익집단들의 이해관계에 얽혀 진입장벽을 설치했다든지 하는 칸막이를 높인 것들이다. 국제 기준에 맞게 규제를 줄이면 자본 유입도 많아진다. 우수 인력도 많이 가서 생산성을 높이고 세계 무대에 진출해서 제조업 못지않게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우리가 가진 것은 사람이라는 자산이다. 보건·의료, 교육, 관광, 방송·통신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치열한 세계 경쟁에 노출돼서 험난한 시련 딛고 일어설 수 있어야 한다. 우물 안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민영화 논란도 아쉬운 부분이다. 사실 민영화가 아니고 주식 일부를 매각한다는 건데 민영화 논란이 되면서 제대로 되지 않았다. 금융시장 사정 때문이기도 했고, 국민적 공감대도 충분히 얻지 못했다. 늘어나는 복지재원을 마련하려면 세금을 더 걷기가 만만치 않은 만큼 세외수입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국가가 지분 50%를 가지고 있으면 주요 의사결정은 다 할 수 있다. 기업은행 주식이나 산업은행 주식을 매각하는 것 등은 일관되게 추진됐으면 좋겠다.”
△임기 중 애착이 가는 정책은?
“재정 건전성을 유지한 결과 우리 경제의 체질을 튼튼하게 만든 것이다. 정치권, 언론, 경제학자들이 재정 건전성 지키려고 성장률 저하를 방관했다고 비판하지만, 어떤 경제정책이든 대가나 비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재정 건전성을 지키다 보면 경기가 좀 활성화되지 못하는 그런 측면이 있을 수 있다. 비판은 있을 수 있지만 좀 감내를 하고 꾸준히 일관된 정책을 펴는 것이 좋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각계각층의 다양한 요구가 분출됐기 때문에 나름대로 정제해서 공약이라는 게 나왔다. 하지만 공약을 정리해서 대차대조표 만들어보면 하고자 하는 정책과 실제로 할 수 있는 여건과의 괴리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런 문제를 공론화의 과정을 거쳐서 정책 우선순위를 정하고 경중과 완급을 따져서 재정비하는 작업을 새 정부가 해야 한다.”
△미국이 재정절벽 협상을 타결하고 일본 아베 내각이 들어서면서 전세계적인 환율 전쟁이 벌어질 조짐이다. 환율 방어 대책은 무엇인가?
“환율에 대해 직접 언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언제나 우리 입장은 G20 서울정상회의 때 나왔던 액션 플랜대로 시장수급과 펀더멘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다만 과도한 방향으로 움직임이 있을 때는 미세 조정하는 정도가 정부의 원칙이다. 최근 외환시장 동향을 예의주시하면서 미세 조정만으로 어려운 국면이 되는지 아닌지를 잘 분석해서 추가로 할 조치가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 아직 조치가 어떤 것이냐는 단계까지는 와 있지 않다.”
△L자형 저성장 구조가 전망되고 있다. 어떻게 극복할 수 있나?
“실질성장률이 잠재성장률보다 낮은 것은 안타깝다. 지난해보다 성장률 자체가 나아지고 실질성장률과 잠재성장률의 갭도 올핸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저성장 기조는 맞지만 L자형인지는 아직은 모르겠다. 지난해 성장률이 2.1%에서 올해는 3%로 나아질 것으로 본다.
그러나 무리하게 재정, 통화, 외환 정책 수단을 구사하게 되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공짜 점심은 없다. 돈을 많이 풀면 한계기업 구조조정이 지연되는 등 당장은 한숨 돌릴 수 있겠지만 언젠가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지나치게 경제에 주름살을 준다거나, 미래에 주름살을 끼치게 한다거나 우리 경제의 체질을 허약하게 만드는 그런 정책을 구사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가계부채 문제가 우리 경제의 뇌관이라는 시각이 있지만 기우라는 목소리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일관성 있게 연착륙 추이로 가고 있다고 본다. 부채총량 증가율도 둔화하고 있고 질적으로 개선되는 모습이다. 가계부채 전체가 뇌관이다, 시한폭탄이다 하는 것은 다소 과장된 분석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국제 신용평가사를 포함해 국제통화기금(IMF)도 그렇게 진단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여러 극단적 가설을 넣어서 스트레스 테스트했는데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될 가능성은 아주 낮다. 안심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꾸준히 노력한다면 연착륙할 수 있다. 취약계층과 위험계층은 여전히 있고, 그 취약계층에 대한 서민금융 지원과 다중채무자에 대한 특단의 맞춤대책은 계속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