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경영 환경은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제18대 대통령선거를 앞둔 3명의 유력 대선후보 모두가 경제민주화를 외치고 있고, 재계는 차기 정부의 대기업 정책 변화에 눈을 크게 뜨고 있다. 한국 경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미국과 중국에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다.
여기에 내년 경영환경도 어려움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혁신을 통한 정면 돌파식 인사가 단행될 것인지,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안정형 인사를 통해 후일을 도모할 것인지 관심이 모아진다.
과거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때를 살펴보면, 어려울 때 일수록 정면 돌파식 인사가 주로 이뤄졌다는 것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삼성은 2008년 8월 금융위기가 일어난 다음해 1월 그룹인사에서 창사 이래 가장 큰 폭의 사장단 인사를 단행했다. 만 60세 이상 사장들은 예외없이 옷을 벗었다. 재임 기간이 긴 사장들도 줄줄이 물러났다. 세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젊은 인사들을 대거 발탁했다는 게 삼성 측 설명이었다.
외환위기에 빠졌던 1997년에도 당시로서는 사상 최대 규모인 426명의 승진인사를 단행했다. 당시 삼성은 “앞으로 위기 상황에 수세적이기보다 공격적인 대응 전략으로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기 위해 경영여건 악화에도 불구하고 최대 규모의 승진인사를 단행했다”고 설명했다.
SK그룹과 현대차그룹도 금융위기가 시작한 이후 안정보다는 혁신을 선택했다.
먼저 SK는 ‘임기 중에는 관계사 최고 경영자(CEO) 인사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고 SK에너지와 SK텔레콤 등 주력 계열사 최고경영자를 갈아치웠다.
현대차그룹도 마찬가지다. 이미 2007년 12월에 핵심 요직에 대한 인사를 마무리 했지만 다음해 1월 최재국, 서병기 등 부회장 2명을 갑작스레 일선에서 물러나도록 했다.
반면, LG그룹은 안정을 택했다. 2008년 12월 인사에서 LG전자, LG화학, LG디스플레이 등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를 단 한 명도 교체하지 않았다. 승진인사도 예년과 비슷한 규모로 이뤄졌다. 어려울 때는 사람을 내보내지 않는다는 구본무 회장의 원칙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하지만 내년 인사에서는 구본무 회장이 ‘시장선도 성과’ 원칙을 거듭 강조한 상황이라 큰 폭의 인사가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친정체제 강화도 위기 상황에서 인사의 큰 흐름이다.
1997년 말 인사에서 LG는 구본무 회장의 둘째 동생인 구본준 LG반도체 전무를 이 회사 대표로 선임했다. 전문경영인 체제를 강조해온 LG로서는 파격이었다.
삼성도 당시 이중구 삼성영상사업단 사장을 삼성생명 사장으로 임명하는 등 이건희 회장의 신임이 두터운 인사들이 부상했다. 이밖에 금융위기 이후 LS그룹, LG패션, GS건설, 현대백화점그룹, 신세계그룹 등이 오너 경영인을 전진 배치했다.
자신이 신임하는 인물을 발탁해 전면에 앉힘으로써 그룹 분위기를 쇄신하고 경제위기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복안인 셈이다. 올해 인사에도 ‘위기에는 친정체제 강화’라는 공식이 성립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