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27일 ‘재벌 저격수’로 불리는 장하성 고려대 교수를 영입함에 따라 유력 대선후보 3인의 경제정책 자문그룹 진용이 갖춰졌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선대위에서 당내 경제정책을 책임지는 공감1본부와 별도로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박영철 고려대 석좌교수를 포함한 관료·전문가들로 자문그룹을 구성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진영에서는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중심으로 한국미래연구원과 서강대 출신 학자그룹이 대거 활약하고 있다. 각 진영 경제 참모 및 자문그룹 인사들이 모두 후보 자신과 철학을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朴, 김종인·김광두 ‘경제민주화’와 ‘성장’
박근혜 후보의 경제정책 기조는 크게 경제민주화와 경제성장이다. 경제민주화는 국민행복추진위원회(이하 행추위) 김종인 위원장이, 성장정책은 국가미래연구원의 김광두 원장이 행추위 산하 ‘힘찬경제추진단’을 이끌고 있다.
김 위원장이 말하는 경제민주화는 국가 유기론체에 입각한 국가주의에서 파생된 독일식 사회적 시장경제에 근간을 두고 있다. 사회적 시장경제란 시장의 자유경쟁을 보장하되 정부가 공정한 시장질서 형성 및 유지를 책임지는 형태다. 그가 독일 뮌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한 것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사회가 질서 있고 조화를 이루도록 하려면 제도적으로 인간의 탐욕을 견제할 수 있어야 하며 그 해법이 경제민주화”라고 했다. 결국 시장경제의 주도권을 쥔 재벌들에 대해 정부가 일정 부분 제재를 가하고 반대로 중소기업·자영업자엔 혜택을 줘 사회 불균형, 양극화를 해소하고 사회 통합을 이루는 게 목표다.
반면 김 원장은 보수경제학자로 성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박근혜 대선후보가 김 원장을 기용한 것도 김 위원장과 균형을 맞추기 위한 의도라는 얘기가 많다. 김 원장은 힘찬경제추진단장으로서 거시경제와 금융·외환 정책 등 경제전반을 포괄적으로 다룬다.
김 원장이 썼던 논문을 살펴보면 그는 경제성장이 저조할 경우 분배적 평등은 생활수준의 하향 평준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분배적 평등의 우선적 추구는 경제생활 주체들의 창의성과 경쟁의욕을 저하시켜 경제성장을 저해할 것으로 분석했다. 그가 성장담론을 만들어낼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安, 장하성 ‘재벌개혁’과 ‘공정한 경쟁’
안철수 후보 품에 안긴 장하성 교수는 참여연대 활동 등을 통해 재벌개혁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어왔다. 1997년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장을 맡은 뒤 삼성 계열사 간 부실·부당거래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기업구조 개선, 소액주주운동 등을 이끌었다.
안 교수가 저서 ‘안철수의 생각’에서 경제민주화의 우선 순위를 ‘재벌개혁’에 뒀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생각이 어느 정도 일치한다. 안 후보는 지난 27일 기자회견에서 “장 교수가 저희 캠프에 참여해 정말 크나큰 원군을 얻었다”며 “우리나라 전체 발전에 정말 큰 공헌을 해 줄 것”이라고 밝혔다.
장 교수는 정책네트워크 포럼 ‘내일’에 경제민주화 포럼을 구성하고 외교, 안보, 통일분야를 제외한 정책분야 전반을 총괄하게 된다.
장 교수가 구상하고 있는 정책 방향은 △공정한 경쟁 보장 및 양극화 해결을 위한 재벌개혁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문제를 해소하는 노동 개혁 △노동자와 서민, 중산층, 중소기업 희생 없는 경제 △사회 구성원 모두를 포용하는 포용성장 등이다.
장 교수는 재벌개혁 방향과 관련 “기본적으로는 공정한 시장과 경쟁에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시장 지배력을 가진 강자가 결과를 지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구조를 바꿔야 한다”며 공정한 경쟁을 강조했다.
출자총액제한제도나 순환출자 금지 등과 관련해서는 “폐지 여부를 비롯한 여러 의견이 있다. 여러 의견을 수렴해 앞으로 얘기해나가겠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文, 박승 반(反)재벌 이미지에 ‘합리성’ 가미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의 경제자문 참모 중 박승 전 한은총재는 ‘경제발전론’을 전공한 ‘유연한 실용주의자’라는 평을 받는 경제 원로 중 한 사람이다. 노태우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수석과 건설부 장관을 지냈고, 김대중 정부 말에서 노무현 정부 초로 이어지는 2002~2006년 한국은행을 이끌었다.
그는 “진정한 개발을 위해서는 필요에 따라 성장 우선 정책과 안정 우선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경제철학을 갖고 있다. 성장과 안정을 대립되는 개념으로 보지 않는 경제철학 기조를 지닌 것이다.
그래서인지 박 전 총재는 27일 경제 간담회에서 문 후보에게 재벌개혁과 관련 “경제력 집중 문제나 지배구조 개선 등은 해결해야 하지만 단계적으로 해서 경제에 미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 좋다”며 “예를 들어 순환출자를 한꺼번에 없애거나 줄이는 것은 대단히 큰 혼란이 온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또 “우리 경제 초미의 관심사가 양극화와 고용 없는 경제 등인데 지금 정당이 내놓는 치유 수단은 단편적인데다 세입이 보장되지 않아 국민이 보기에 꼼수로 보인다”며 “이 부분에 대한 차별화를 할 필요가 있다. 30조원의 비용을 마련해 생존, 실업, 교육, 의료 등 국민의 기본 수요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몇 가지 보완을 전제로 받아들이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을 60,70년대에는 개발론자였으나 80,90년대는 안정론자, 외환위기때는 성장론자, 그 이후에는 안정론자였다고 소회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