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융권의 화두는 단연 ‘금리’다. 서민들이 가계 빚으로 신음하는 사이 은행권의 양도성예금증서(CD)금리 담합 의혹에서부터 가산금리를 악용한 바가지 대출금리까지 매일 금리로 인해 멍드는 금융권이다.
국민들은 은행 대출금리가 오를 때는 득달같이 오르고 떨어질땐 던딘 주유소 기름값 같다며 시중은행들의 부도덕한 금리 장사에 비난의 날을 세우고 있다. 반면 은행권은 금리체계에 대한 신뢰가 깨지면서 대출금리 인하에 따른 수익성 악화에도 마음놓고 얘기할 수 있는 형편도 안된다. 바야흐로 ‘금리불신의 시대’에 누구하나 마음놓고 금리를 논할 수 없는 형국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 11일 기준금리를 연 3.0%로 0.25%포인트 전격 인하했다. 한은이 내세워왔던 금리 정상화를 포기하고 41개월 만에 금리를 인하한 것은 급속한 경기하강을 우려해서다. 글로벌 경기 경기부진에 선제 대응했다는 게 김중수 한은 총재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번 인하는 지난 12개월 동안이나 금리 동결 일변도여서 한은이 대체 뭐하는 곳이냐는 비판이 고조됐던 뒤끝이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금리 인하 도미노 속에 한은도 마지못해 내렸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는 평이다.
금리를 인하할 경우 시중에 유동성이 더욱 풀리면서 가계부채 규모를 키울 수 있지만 사실상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금리 인하 효과는 크다. 내막이 어떻든 간에 41개월 만의 기준금리 인하 효과는 금융시장에서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유례없는 초저금리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올 초까지만 해도 4%대였던 1년 만기 은행 예금금리를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은이 집계하는 예금은행의 신규 취급액 수신금리는 가장 최근 집계치를 보면 5월 3.63%로 지난해 2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금리 4% 미만인 정기예금 비중은 87%로 2010년 11월 96% 이후 가장 높다. 이는 갈 곳 없는 자금이 은행 예금과 채권으로 몰린 탓이다.
이같은 금리변동에는 국책은행들이 중심에 있다. 시중은행의 20배에 이르는 예금금리, 10%대 대출금리 등 파격적 상품을 앞세우고 있다. 예금 금리를 높여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는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이 이번에는 대출 금리 인하에 나설 채비다. 강 회장은 “전국 지점에서 '놀고 있는 돈'을 없애 수익성을 높이면 대출 금리를 낮출 수 있다고 본다. 구체적인 방안을 연구하라”고 지시했다. 조준희 기업은행장 역시 “중소기업 대출 금리 인하를 추진 중이며, 대출 금리 상한을 연 12%에서 10.5%로 내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과거 시중은행‘들러리’ 역할에 그쳤던 모습과 180도 달라졌다.
이에 금융시장 ‘맹주’를 자처하던 시중은행은 마땅한 반격 카드를 내놓지 못한 채 당황하고 있다. 이 와중에도 금리인하에 대해서는 미묘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대출 금리 인하가 능사가 아니다’라는 쪽과 ‘더 낮춰야 한다’는 쪽으로 은행 수장들이 제시하는 해법이 묘하게 갈리고 있다. 또 국책은행의 고금리 수신에 피해가 없지 않다며 금리에 따라 움직이는 고객은 충성도 높은 고객 아니라고 단언하는 은행장도 있다. NH농협금융지주 출범과 우리금융 민영화 등으로 이어지는 ‘금융 빅뱅’이 일어난 뒤 재편되는 금융시장에서 자기 몫을 확실히 챙겨두겠다는 의지를 애써 애둘러 표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