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식형펀드에서만 하룻밤에 5000억원씩 순유출되면서 펀드런을 우려했던 만큼은 아니지만 얼마전까지 펀드에서의 자금이탈이 계속되면서 주식형펀드에서 올해만 5조원이 넘는 돈이 빠져나갔다.
최근 조금씩 자금이 유입되고는 있지만 투자자들의 마음이 돌아섰다고 하기에는 부족하다. 투자자들은 오히려 안정성이 부각되면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주가연계증권(ELS)에 빠져있는 모습이다.
불안한 주식시장도 펀드시장 활성화의 발목을 꽉 잡아놓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달말 시행을 앞두고 있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이하 근퇴법) 개정안이 펀드시장에 신바람을 불어넣기를 기대하고 있다.
저금리와 퇴직연금시장에서의 지나치게 높은 확정급여형 상품 비중 등을 고려할 때 은퇴자금이 펀드시장으로 흘러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개인형퇴직연금(IRP), 자금몰이 촉매제
전문가들은 개인형퇴직연금제도(IRP)가 은퇴자금이 펀드시장으로 유입되는 촉매제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IRP의 성장이 퇴직연금시장의 중심축을 확정급여형(DB)에서 확정기여형으로 옮겨가도록 해 펀드 수요를 확대할 것이란 분석이다.
김혜령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개정 근퇴법이 시행되면 강화된 기능과 확장된 적용범위를 바탕으로 IRP의 성장이 두드러질 것"이라며 "DB형 중심의 퇴직연금시장에도 혁신을 불러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퇴직급여의 IRP 자동이전은 퇴직급여의 유입세를 가파르게 상승시켜 IRP의 성장시킬 요인으로 꼽힌다.
그동안 IRA에서는 퇴직시 임의로 퇴직급여를 이전하도록 했지만 개정법에서는 퇴직시 받은 급여의 IRP 이전을 자동화했다.
근로자가 미리 IRP를 설정하고 퇴직급여를 해당 계좌로 받야아 한다. 근로자가 따로 설정을 하지 않으면 해당 퇴직연금사업자의 IRP에 급여가 자동이전된다.
과거 구글사의 경우 근로자들이 자사의 401(k)에 임의로 가입하도록 했을 때 50~60% 수준이었던 IRP가입률은 일단 가입시킨 후 자유롭게 해지하도록 했을 때 88%까지 올라갔다.
개정법에서 추가납입을 허용한 것도 IRP의 성장을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
기존 제도에서는 퇴직연금 가입자의 추가납입은 DC형에서만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IRP를 통해 DB형 가입자들도 연간 1200만원까지 추가납입을 할 수 있게 됐다.
자영업자의 가입이 가능해진 것도 IRP의 성장을 촉진할 전망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퇴직연금 규모는 2011년 52조원에서 연평균 17%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2020년 234조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기간 IRP는 4조3000억원에서 47조6700억원으로 연평균 28% 성장해 퇴직연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2%에서 20%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돈줄기'는 채권혼합형 펀드로
퇴직연금시장에 IRP시대가 열리면서 은퇴자금은 주로 채권혼합형펀드로 흘러들 것으로 전망된다.
퇴직연금자산 운용에 요구되는 기대수익률을 달성하기 위해 실적배당형 상품의 증가가 기대되는데 이 자리를 대부분 채권혼합형펀드가 차지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박진환 한국투자증권 상품마케팅 부장은 "현재 금리수준 등을 감안할 때 은퇴후 필요한 수준의 수익률을 위해서는 실적배당형상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며 "실적배당형 상품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채권혼합형 펀드로 은퇴자금의 물줄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들 것"이라고 말했다.
퇴직연금시장에서 개인의 영향력이 확대될 것이란 점도 채권혼합형펀드로의 자금유입을 촉진시킬 요인으로 분석된다.
박동욱 현대증권 PB리서치팀장은 "퇴직연금이 운용능력을 중요시하는 개인대상 마케팅시대에 진입하면서 채권혼합형을 비롯한 실적배당형 상품 비중 증가가 불가피할 것"이라며 "IRP시대에서 성공한 퇴직연금사업자가 되기 위해서는 신뢰할 수 있는 자산배분형 연금자산 운용방식과 투자교육에 집중하는 질적 성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실적배당형 상품에 대한 투자가 단기에 큰폭으로 증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적배당형 상품 잔액은 현재 4조원에서 4년후 51조원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보다 연금시장이 발달한 네덜란드, 스위스,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등 6개국의 사례를 참고·분석해 얻은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