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18대 국회가 사실상 종료됨에 따라 금융권의 관심이 19대 국회로 향하고 있다. 18대 국회 통과를 기대했던 주요 금융 관련 법안들이 국회선진화법(몸싸움방지법안)을 둘러싼 여야 간 정쟁 탓에 뒷전으로 밀린데 따른 것이다.
이달 초 18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열릴 가능성이 아직 남아있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다. 결국 18대 국회에서 해결하지 못한 과제들이 19대 국회로 넘어갈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금융권에서는 19대 국회에 기대감을 걸고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국회에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현안은 무엇일까?
금융권에서는 자본시장통합법 개정안을 다음 국회에서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로 지목했다. 18대 국회 미처리 된 금융관련 법안 가운데 19대 국회에서 가장 빨리 처리해야 할 법안을 묻는 설문에 응한 50개 금융사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자본시장통합법 전면 개정을 1순위로 꼽은 것.
자본시장 인프라 개혁 등을 골자로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통과돼야 국내 대형 투자은행(IB) 육성을 위한 제도 개정과 장외 파생거래 중앙청산소(CCP) 설치, ATS(대체거래시스템)·거래소 허가제 도입 등과 같은 관련 사안들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본시장법 개정안 통과를 가정하고 IB 업무 확대를 위해 대규모 유상증자에 나섰던 증권사들에게 자본시장법 개장안 통과는 촉각을 다투는 문제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증권사들의 수익성이 좋지 않은 이유는 증권사들이 브로커리지(중개업) 업무만 하기 때문"이라며 "업무의 다변화를 염두에 두고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준비된 것인데 법안 통과 무산으로 차질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증권사들 뿐만 아니다. 한국거래소 역시 자본시장법 개정안 미통과로 대체거래소(ATS) 도입과 장외 파생거래 중앙청산소(CCP) 설립이 늦어지고 있다. 특히 CCP설립이 미뤄질 경우 국제적 약속이 깨질 위험마저 우려되고 있다.
CCP설립은 2009년 9월 미국 피츠버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각국이 '늦어도 2012년까지는 표준화된 모든 장외파생상품은 중앙청산소를 통하도록 한다'는 내용에 합의한데 따른 것으로 이미 미국과 일본은 2010년에 관련법 통과 후 CCP 운영에 들어갔고, EU(유럽연합)도 이달 중 관련법을 제정할 계획이다.
또 국내 금융회사들의 피해도 우려된다. G20 합의사항을 살펴보면 CCP를 통해 결제하는 은행과 그렇지 않은 은행 사이에 자기자본 규제 등에 차등을 둔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예탁결제원도 중점 육성 사업 추진이 늦춰질 수 있어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포함된 섀도보팅(Shadow Voting)제도 폐지가 늦어질 경우 전자투표의 동력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금융당국은 자본시장법 개정안 통과를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18대 국회 내 처리를 1찰 목표로 하고 있지만 불발될 경우 19대 국회가 개원하는 대로 조속히 법안처리를 끝내겠다는 계획인 것.
금융당국은 자본시장법 이 외에도 금융소비자보호법과 예보법 통과에도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은 국회에서 심의조차 이뤄지지 않았지만 금융소비자 보호 체계를 정립하는데 필수적이라는 판단에서 법안 통과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예보법 개정은 현재 2026년까지 한시적으로 규정된 특별계정 운영시한을 5년 더 늘려 구조조정 자금을 추가로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추가로 6조원가량의 구조조정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또 이슬람 채권인 수쿠크를 발행할 수 있도록 조세특례제한법을 개정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국내 금융회사들이 오일머니가 풍부한 중동계 자금 유치에 나서고 있지만 수쿠크법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이슬람채권법이 통과된다면 낮은 금리로 좀 더 쉽게 자금조달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며 "다음 국회에서는 통과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과도한 규제 보다는 업계에 대한 이해와 관심 필요"
금융업계 관계자들은 19대 국회에 조속한 법안 처리와 함께 업계에 대한 이해와 관심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18대 국회가 과도한 포퓰리즘 정책으로 업계에 대한 지나친 규제에 나섰던 부분이 있었던 만큼 19대 국회에서는 포퓰리즘 정책을 지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설문에 응한 은행업계 관계자는 "금융사들에 공적 기능 강화만을 요구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시장자율 및 시장참여자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시장개입으로 인한 부작용 또는 역작용의 폐해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정치권과 금융당국, 업계 간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 경제 불안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정치권이 소모적인 힘겨루기에 나서기 보다는 국내 금융산업의 안전을 위해 업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