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이 왜 농토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 다니며 도적이 되는가? 정도전이 보기에는 천성이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라 먹고 살기 힘들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사대부들의 세계와는 달리 일반 백성들에게는 먹는 문제의 해결이 가장 시급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경제형편이 나아진 오늘날에도 의식주가 중요한 것이거늘 정도전이 살던 당시에 그 형편이란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당시의 형편이 어떠했을까?
고려말에는 토지가 모든 생산의 원천이었다. 그러나 토지 소유는 매우 불공평하였다. 권력자나 지방토호들은 산천을 경계로 땅을 소유하고 있었던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송곳꽂을 땅도 없는 형편이었다. 더욱이 소작료는 적은 경우가 50%, 많으면 7-8할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다 한다.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먹고 살기 힘든 상황이 되다보니 양민들은 농사를 포기하고 상업이나 수공업에 종사하거나 아니면 아예 생업을 버리고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이래서는 백성들의 생활안정은 물론이고 국가가 제대로 세금도 거두어들일 수 없다. 나라와 백성은 가난하고 중간의 착취 계층만 배를 불리는 구조였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 정도전은 과감하게 칼을 드리댄다. 과전법을 제정하여 토지를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돌려주고 소작료를 소출의 10%로 낮추었다. 흩어진 유민을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농업과 양잠을 진흥하여 산업 기반을 튼튼히 하였다. 기록은 이 조치로 민심이 이성계에게로 돌아서고 조선개국도 가능하였다고 적고 있다. 그는 더 나아가 개국 후 자기 스스로 삶을 꾸려가기 힘든 과부, 고아와 늙어 자식이 없는 사람들을 보살피고 의창제도와 혜민전약국을 통해 빈민구제사업도 마련하였다.
우리를 먹여살리고 있는 전통산업의 경쟁력은 떨어지고 있는데 비해 미래먹거리 산업은 쉬 육성되지 않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중산층이 몰락하면서 경제적 양극화의 도를 넘어 사회적 양극화에까지 이르고 있다고 걱정이다.
자본주의 4.0 시대는 지난시절 우리를 지배해온 성장 지상주의와 산업화 경쟁, 그리고 빨리 빨리의 문화를 되돌아보게 만들고 있다.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거나 “혼자 빨리 가기” 보다는 “함께 멀리 가기”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성장이 자동적으로 일자리를 가져다주고 분배의 개선과 복지향상을 담보해주던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다면 이제는 산업현장에서 탈락한 실업자에게 생활의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일, 이들의 재기에 필요한 직업교육과 일자리를 알선하는 일, 생활능력이 없는 극빈층을 보살피는 일 자체가 국가의 중요한 기능이 되었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는 우리가 지켜야할 가치이다. 그러나 정부가 완벽하지 않은 것처럼 시장이나 제도 또한 항구불변 완벽한 것이 아니다. 새대와 여건의 변화에 맞추어 끊임없이 보완하고 개선해 나가야한다. 복지지출에 대한 투자적 성격을 높여서 경제 사회적 불평등이 고착화되는 것을 막고 개천에서도 용이 날수 있는 제도적 사다리를 만들어 주어야한다.
이런 면에서 이제는 경제운용 방향도 달라져야한다. 대기업 중심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가는 구조로, 수출중심에서 수출과 내수가 균형을 이루는 체제로, 성장우선에서 성장과 분배가 선순환을 이루는 모습으로 경쟁우선에서 다소 더디더라도 함께 가기로, 단기적 성과내기에서 지속가능한 성장으로, 시장논리를 우선시하는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가진자가 약자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베푸는 것이 미덕이 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일자리 만들기와 삶의 질을 높이는 정책을 통해 중산층을 복원하고 사회통합을 이루어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진실로 정도전이 추구한 “21세기형 과전법”이 필요한 시기이다.
/박봉규 대성에너지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