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의 기부를 얘기할 때면 외국 사례가 자주 인용된다. 서구사회에서는 과거부터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가진 자들의 사회·도덕적 의무실천이 장려됐기 때문이지만, 국내에서 부자들의 사회적 환원을 대표하는 사례가 없었던 이유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엄청난 부를 축적했음에도 이웃에 대한 배려를 가훈으로 삼았던 경주 최부잣집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 준다.
최부잣집이 300여년간 부를 이어올 수 있었던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육훈(六訓)’이 있다. 이 여섯가지 가르침 중에는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주변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와 같은 적극적인 나눔에 대한 가르침이 있었다.
또 ‘시집 온 며느리들은 3년간 무명옷을 입어라’라고 가르치는 등 부를 과시하는 겉치레를 하지 않도록 집안 교육이 이뤄졌다.
특히 경주 최부잣집은 300년 만석꾼이지만, 전 재산을 교육에 바침으로써 마지막 후손에게는 300여년간 이룬 선행의 정신만 있었을 뿐 물질적 유산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전문가들은 “부와 명예를 모두 얻기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경주 최부잣집의 사례는 오늘날 부자들이 사회에 할 수 있는 역할을 제시하는 좋은 길라잡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도 최근 기부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시장에서 야채나 젓갈 장사를 수 십년간 하면 모은 돈을 기부하는 사례가 소개될 때의 감동은 재벌이나 대기업이 수 백억 또는 수 천억원의 기부를 할 때보다의 감동보다 훨씬 크게 다가온다.
고액자산가들의 자산을 관리해주는 금융기관들도 요듬에는 기부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부자의 조건이 ‘돈이 많은 사람’에서 ‘존경받는 사람’으로 변화할 수 있는 초석을 놓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또 노후를 위해 모았던 5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카이스트에 기부하면서 행복을 느꼈다는 김삼열 씨의 사례는 훈훈한 감동뿐만 아니라 기부가 행복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기부가 의무감이나 남의 시선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이뤄지는 행동으로까지 발전될 수 있다는 좋은 사례이다.
히말라야의 자그마한 나라 부탄은 지극히도 가난하다. 아시아의 경제대국인 중국과 일본의 경제력에 비하면 지극히 미미한 수준이지만, 아시아 국가가운데 행복지수가 가장 높다.
이들이 문명과 단절되고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할 수 있는 것은 ‘행복과 물질적 풍요로움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기부를 하는 사람들은 기부하는 것이 즐거워서, 또는 기부하는 것 자체가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기 때문에 기부에 중독된다고 말하곤 한다”며 “이같은 사실은 많은 심리학적 연구를 통해 타인과 친사회적인 지출을 많이 할수록 행복감의 크기도 증가한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같은 사례들은 시대가 발전할수록 행복과 타인으로부터의 존경 등 무형적인 요소들을 부자의 조건으로 꼽는 비중이 높아지는 설문조사 결과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