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공과 함께 향후 중국의 시한폭탄으로 주목받는 것이 고학력 실업자들이다.
1990년대 후반 이후 대학 입학 열풍과 함께 중국에서는 대졸자가 급격히 증가했다.
세계의 공장으로서 농민공을 대상으로 한 단순 노동 수요는 많았지만 대졸자들이 들어갈 곳은 극히 제한적이라는 현실이 고학력 실업자들을 양산했다.
특히 치열한 경쟁에 직면한 기업들이 곧바로 업무에 투입할 수 있는 경력직을 선호하면서 신규 대졸자들은 노동시장에서 찬밥 신세로 전락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대졸자는 2007년 100만명, 2008년 150만명까지 늘었다. 2009년에도 80만명의 대졸자가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이들은 사회에 새로운 비극의 주인공이 됐다.
저임금·비정규직으로 생계를 이어가면서 교외의 싼 아파트를 빌려 30명이 무리지어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른바 ‘개미족’으로 불리는 이들은 상하이·광저우·항저우·우한·시안·정저우 등 대도시에 집단촌을 형성, 전국적으로 100만명이 넘는다.
지난 2009년 베스트셀러에 오른 ‘개미족’의 저자 롄쓰(廉思)는 농촌 출신인 개미족에 대해 “부모는 대부분 빈곤층으로 대부분 소득이 낮다. 이러한 역경 속에서 이들은 어릴 때부터 열심히 공부해 대학만 졸업하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으로 학업에 임했지만 대학 졸업과 동시에 꿈은 깨지고 만다”고 밝혔다.
아무리 노력해도 뛰어넘을 수 없는 신분의 벽, 학력이 있어도 끼어들지 못하는 연고·자본주의 실태에 실망하고 자신의 성공을 기대하는 부모에게 기댈 수도 없는 것이 개미족의 현실이다.
개미족은 차이나 드림의 한계, 빈곤의 악순환이라는 현실을 몸소 체험하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암울한 현실은 중국 상아탑의 흐름을 바꿔놓고 있다.
20여년 전 대학 캠퍼스에 만연하던 서구식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동경은 사라졌다.
급속도로 진행되는 시장경제화로 학생들은 정치에 대한 관심을 잃었다.
대신 스펙을 높이고 기회만 잘 잡으면 부를 쌓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많은 학생들이 체제에 맞서기보다 체제를 이용하는 길을 선택하고 있다.
공산주의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도 자아 실현을 위해 필요하면 입당을 선택하고 있다.
당 역시 우수한 학생은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 결과 1990년 불과 1.2%였던 대학생 당원 비율은 급속도로 높아져 2007년 10월 입당한 대학생 비율은 전체의 3분의1이 넘었다.
이는 1989년 민주화를 부르짖으며 공산당 정권에 맞선 천안문 사태를 무위로 돌리고 있다고 인권주의자들은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