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한국은행 화폐금융박물관 2층에 위치한 한은갤러리는 관람객으로 북적였다. 방학을 맞은 다섯 살배기 민수는 엄마의 손을 꼭 잡은 채 그림을 둘러봤다. 갤러리 관계자는 “방학을 맞아 하루 평균 200~300명의 가족단위의 관람객이 갤러리를 찾는다”고 설명했다.
한국은행에 화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술사적 가치가 높은 근대 한국 미술의 작품 1292점도 한은이 소장하고 있다. 1292점은 한국화 625점, 서양화 396점, 서예 225점, 조각품 46점으로 구성돼 있다. 화폐뿐 아니라 근대 미술의 창고이기도 한 셈이다.
특히 이당 김은호의 작품은 미술사적 가치가 뛰어나다는 평가다. 김은호는 임금의 초상을 그리는 구한말 최후의 어진화가를 지냈다. ‘논개 초상’, ‘춘향 초상’ 등 미인도에서 독보적 위치에 올라있다.
이외에 짙은 윤곽과 강렬한 색채를 쓴 황염수의 ‘설악풍경’, 남종 산수화의 대가인 남농 허건의 ‘추강조어(秋江釣魚)’ 등 모두 18점이 ‘한국의 수변 풍경전’이란 주제로 한은갤러리에 전시 중이다.
한은이 소장하고 있는 미술품은 작품의 우수성뿐 아니라 고전으로서 가치가 있다. 한은이 이 같은 작품을 가지게 된 데는 일제감정기였던 조선은행 시절까지 올라간다. 당시에는 정부 기관에서 주최하는 미술대회인 일명 ‘관전’이 봇물을 이뤘다. 입선을 하면 으례 해당기관에서 작품을 사주었다. 이 때문에 한은이 일제강점기 시절에 활동한 화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작품을 만든 대부분의 작가들이 현재는 세상을 떠났다.
한은은 일년에 한번 한은갤러리에 소장 미술품을 전시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창립 60주년을 맞아 ‘명품’이란 주제로 작품을 엄선해 전시회를 열었다. 하지만 고작 16~20점의 작품이 전시될 수 있는 갤러리는 공간이 협소해 많은 작품을 공개하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과거 전시용으로 작품을 구입하다 보니 1292점 대부분이 창고보다는 지역본부나 본관에 전시돼 있어 일반 대중이 볼 수 있도록 옮기는 데도 어려움이 따른다.
장인석 화폐금융박물관 학예사는 “미술사적으로 조명을 받은 근대작가들의 작품들이 소멸돼 가고 있는데 한은의 고전을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미술은행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