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괴물은 너무나 무시무시해서 ‘입에서는 횃불이 나오고 불꽃이 튀어 나오며 콧구멍에서는 연기가 나오니 마치 갈대를 태울 때 솥이 끓는 것’과 같다.
‘칼이 그에게 꽂혀도 소용이 없고 창이나 투창이나 화살촉도 꽂히지 못하며 물맷돌도 그것에게는 겨 같이 되며 몽둥이도 지푸라기 같이 여기고 창이 날아오는 소리를 우습게’ 여긴다.
또 ‘깊은 물을 솥의 물이 끓음 같게 하며 바다를 기름병 같이 다루기도’하고 ‘그것의 뒤에서 빛나는 물줄기가 나오니 깊은 바다를 백발로 만들’며 ‘세상에는 그것과 비할 것이 없으니 그것은 두려움이 없는 것으로 지음’받았다.
이렇게 기세가 등등하니 ‘그 앞에서는 절망만 감돌 뿐’이고 ‘그것이 일어나면 용사라도 두려워 달아나’는 것이 상책인데 이 괴물이 ‘모든 높은 자를 내려다보며 모든 교만한 자들에게 군림’하는 ‘왕’인 ‘리바이어던(leviathan)’이다.
리바이어던은 인간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지만 결국 야훼(yahweh·구약의 하느님)에 의해 물리쳐지는 괴물일 뿐이다. 욥기 41장의 이야기는 가톨릭이 지배하던 시대, ‘신(神)’의 대리인인 통치자의 통치권을 합리화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영국의 철학자인 토마스 홉스는 이 괴물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그는 이 괴물을 ‘신권’에 굴하지 않는 절대군주, 제왕으로 재탄생시켰는데 이것이 1660년 저술된 ‘리바이어던’이다.
홉스는 여기서 ‘절대군주제’ ‘사회계약설’같은 지금까지도 영향력을 미치는 이론을 정립했는데, 그의 이론이 근대국가 설립의 토대가 됐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하지만 자연상태에서는 서로 싸우는 상태인데, 자연상태에서의 싸움을 그치고자 하는 이성의 발견에 따라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절대권력’을 설립하겠다는 사회계약을 맺게 된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국가인데, 이때 국가의 통치자는 절대권력을 갖게 된다. 홉스에 있어 통치자는 ‘신권’에서 벗어나 인민의 안전과 평화를 인간 스스로 보존할 수 있다는 가설에서부터 도출된 이론으로서만이 이론적 가치를 가진다.
홉스의 이론이 법·정치사상면에서 근대이후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사상은 치명적인 우를 범했다. 홉스는 절대권력의 유지를 위해서 절대군주가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봤다.
그의 사상이 전체주의의 이론적 토대가 되고 이후 국가간 전쟁과 국가내 폭력을 합리화하는 도구가 된 것은 이때문이다. 인민이 아닌 국가의 유지를 위한 폭력의 이론적 근거가 되면서 새로운 괴물(리바이어던)이 탄생한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도 폭력이 문제가 되고 있다. 조직폭력배, 깡패들의 폭력이 아니라 국가의 폭력이다. 폭력의 방법도 다양하다. 한진중공업 사태에서 본 것처럼 물리적 폭력도 있도 있고, 서민에게만 유독 가혹한 사법폭력도 있다. 하지만 가장 큰 폭력은 국가권력에 의해서 나오는 폭력이다.
이 폭력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누구에게 행해질 지 알 수 없기에 더더욱 두렵게 만드는 폭력이다. 정치인이 맘에 안 들면 정치인에게, 기업(인)이 맘에 안 들면 기업(인)에, 시민이 맘에 안 들면 시민에게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폭력이다.
정치인이든 기업이든, 시민이든, 아니면 국민이든, 상대방의 힘이 강하면 금새 고개를 숙이고, 함께 잘해보자고 손을 맞잡다가도 힘이 약해지면 여지없이 돌아오는 건 보복이라는 폭력이다. 국가는 다양한 형태로 폭력을 행사하지만 사실 이 폭력을 유도하고 격려하는 것은 군주의 힘이다.
군주는 상생에서 공정(사정)으로, 친기업에서 친서민으로 수시로 국시(國是)를 바꾸면서 폭력을 유도한다. 계약은 없고 권력만 있으니 모든 저항은 물거품이 된다.
그러니 국민은 ‘그 앞에서는 절망만 감돌 뿐’이고 ‘모든 자를 내려다 보는 괴물(leviathan)’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알아야 한다. 국민은 두려움의 대상인 ‘리바이어던’이 아니라 국민의 대리인으로서의 ‘대통령’을 원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