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빈·하이디 토플러 부부는 미래학자보다는 혁명가라는 수식어가 더 잘 어울리는 커플이다.
1928년 미국 뉴욕 태생인 토플러는 1949년 뉴욕대학을 졸업하고 아내 하이디를 만났다. 둘 다 학자로서의 길을 가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운동권 성향이 강했던 이들은 학업에 회의감을 갖고 미국 중서부로 옮겨 공장에 취직해 5년간 일한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결혼도 하고 공업화된 대량 생산의 현장에 대해 공부하며 본격적인 인생의 동반자로서의 길을 걷는다.
당시 하이디는 알루미늄 주조 공장에서 일하다 노동조합 사무직 직원으로 자리를 옮겼고, 토플러는 기계 수리공 겸 용접공으로 일하게 된다.
이들 부부는 현장 노동 경험을 살려, 토플러는 노동전문 기자로 워싱턴 지국으로 옮겼고, 펜실베이니아의 일간지 특파원으로 3년간 의회와 백악관 일도 맡았다. 그 사이 하이디는 비즈니스와 행동과학을 중심으로 한 전문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한다.
토플러는 미국 경제 주간지 포춘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뉴욕으로 돌아와 노동전문 칼럼니스트로 변신한다. 이후 포춘을 떠난 토플러는 컴퓨터 업체인 IBM에 발을 들이게 되면서 미래학자로서의 명성에 한걸음 다가선다.
그는 IBM에서 컴퓨터가 사회와 조직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는 업무를 하청받고 컴퓨터 및 인공지능 개발자들과도 친분을 쌓게 된다. 이를 계기로 토플러는 제록스와 AT&T의 자문 역할을 맡게 된다.
그가 미래 시리즈 집필에 들어간 것은 1960년대다. 그는 백악관 담당 정치 노동문제 기자로 일하다 비즈니스 분야로 활동의 터전을 넓혀 1959~1961년까지 ‘미래’지의 부편집자로 활동한다.
그의 관심사는 디지털 혁명, 커뮤니케이션 혁명, 조직 혁명 등에서 나중에 21세기 군사기술, 병기와 기술 증식, 자본주의 증대로 옮겨갔다.
토플러는 1964년에 쓴 ‘문화의 소비자’에서 날카로운 통찰력이 주목을 받았으며 ‘미래의 충격’으로 그 위치를 확고히 다졌다.
이후 10년 주기로 내놓은 ‘제3의 물결’과 ‘권력 이동’은 그의 미래 시리즈를 집대성하며 미래학자로서 그의 이미지로 굳히는 발판이 된다.
토플러는 1996년부터 비즈니스 컨설턴트인 톰 존슨과 컨설팅 업체 토플러 어소시에이츠를 이끌고 있으며, 앞서 러셀 세이지 재단의 객원 연구원, 코넬대학 객원 교수, 뉴스쿨대학 객원 교수 등을 역임했다.
트플러 앤드 어소시에이츠에는 민간 기업 NGO 등을 포함해 미국, 한국, 멕시코, 브라질, 싱가포르, 호주 정부들도 고객으로서 자문을 구하고 있다.
그의 아내 하이디 토플러 역시 작가이자 미래학자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그녀는 미국 국방대학교 교수, 유엔 여성개발기금 미국 위원회 공동의장을 맡고 있다.
이들 부부는 2004년 출간한 ‘불황을 넘어서’외에 다수의 합작품을 선보였다. 이 책에서 부부는 특유의 날카로운 예지력으로 전 세계에 닥친 최악의 불황을 진단하고 해법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