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돼야 하는 한국은행이 지난해 11월부터 청와대에 보고하는 ‘VIP 정례보고서’가 정치권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맞았다.
9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훼손되고 있다며 정부의 눈치를 살피다 보니 금리인상을 단행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나타냈다. 국내외에선 금리 인상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지만 중앙은행이 금리인상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정부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한나라당 이혜훈 의원은 이날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VIP정례보고서‘를 언급하면서 “한국은행의 독립성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부적절한 사례”라며 “보고서를 통해 보고된 ’한국은행의 주관적 판단‘은 도대체 무엇인지 의문스럽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물가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하는 한국은행의 주관적 판단은 금융통화위원회를 통해 독립적으로 행사하는 것이지 정부에 물어보면서 결정하겠다는 것은 스스로 정부의 하급기관을 자임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같은 당 강길부 의원도 “보고서를 받은 대상에는 청와대 비서실장, 경제수석 뿐 아니라 기획재정부 장관과 금융위원장도 포함돼 있어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훼손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한은이 본연의 물가안정 책무를 경시한 채 정부의 5% 경제성장을 맞추기 위해 계속 금리인상을 못하고 실기하고 있다는 우려의 소리가 있다”며 중앙은행이 정부의 눈치를 살피다 보니 물가상승에 대응해 적기에 금리인상을 단행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민주당도 가세했다. 민주당 이종걸 의원은 “지난 1월 기준금리를 인상할 당시 ‘물가를 최우선에 둬야 한다’는 대통령의 발언이 있었다”면서 “시장에는 최고통치권자의 허락이 있은 후에 한은의 정책 방향이 설정된다는 식의 부정적인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과거 어떤 정부에서도 한은이 청와대에 밀착형 보고를 한 적이 없다”며 “이는 한은의 독립성 훼손의 징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몰아붙였다.
같은 당 오제세 의원은 “독립기관인 한국은행이 청와대 등에 정기적으로 경제동향을 보고한 것은 현행 한은법이 규정한 ‘중립적이고 자율적인 정책 집행과 자주성 존중의 원칙’(3조)을 훼손했다”고 비난했다.
김성곤 의원은 “한국은행은 설립 초기부터 혈관에 ‘중립’과 ‘자율’의 피가 흐르고 있다”며 “한은이 총재 지시로 일주일에 한 번씩 자진해 청와대에 동향보고를 한 것에 대해 한은이 청와대에 예속된 것이라는 비판이 거세다”고 밝혔다. 그는 또 김중수 총재 취임 이후 한은이 ‘기재부의 남대문 출장소’로 전락했다는 표현도 다시 등장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중수 한은 총재는 “한은이 가진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아 정보 공유차원에서 작성된 것으로 청와대에만 보고하지 않고 재정부 등 관계부서에 모두 보고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앙은행이 독립성이 훼손됐다는 평가를 듣지 않도록 배전의 노력을 하겠다”고 덧붙였다.